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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코로나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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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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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였다. ‘사회’ 시간에 중세의 문학작품에 대해 배웠는데 그중에 <데카메론>이 있었다. <데카메론>의 배경은 흑사병이 유행하던 무렵의 이탈리아인데, 흑사병을 피해 외딴 별장에 모인 10명의 남녀가 소일거리로 나눈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루 종일 책 읽고 수다만 떨어도 된다니 상상만 해도 행복할 것 같았다.

■언택트 시대의 사회적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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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 공학박사


내 착각이었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시간이 오래 지속된다는 건 행복한 일일 수가 없었다. 믿을 만한 가까운 관계가 없을 때는 다수의 먼 관계로 어느 정도 완충을 할 수 있는데 이런 완충이 어려워졌다. 기존의 가까운 관계는 어찌어찌 유지할 수 있었지만, 가까운 관계가 새롭게 생겨나기도 어려웠다. 한국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연구소가 폐쇄되기도 했던 미국 등에서는 고립감이 훨씬 더 심각했다고 한다.

사회적인 자극의 부족과 고립감은 신체의 건강에도 영향을 준다. 연구에 따르면, 외로움을 느끼거나 친밀한 친구가 적은 대학 1학년생들은 그렇지 않은 대학 1학년생들에 비해 똑같은 독감 백신을 맞고도 면역반응이 더 약했다. 청소년기에 사회적 활동이 부족한 것은 염증의 위험을 높인다. 한편 아동기에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못했던 경험은 20년이 지난 후 이 아동들의 혈압과 체지방에 영향을 주었다.

사회적인 활동 부족은 웰빙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350만여명을 약 7년간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인 고립과 고독감, 혼자 살기는 사망 확률을 30%까지 높였다. 친구의 숫자는 나이와 성별에 따라 다른 경향을 보이는데(어릴수록, 여성일수록 친구가 더 많다고 한다), 고립과 고독감이 사망률에 영향을 주는 정도도 나이, 성별, 건강 등에 따라 달랐다고 한다.

친구, 동료,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막대한 인지 자원(기억, 사고,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기 등)이 든다. 따라서 인지 활동을 요구하는 사회적 활동이 줄어들면, 인지 능력을 개발하고 유지하는 기회도 줄어든다. 원숭이 연구에 따르면, 집단의 크기가 변하면, 사회성과 관련된 뇌 영역들(전두엽, 편도체 등)의 부피도 변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사회적 네트워크의 크기가 변하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와 해마 등에서 변화가 일어나며, 이런 변화는 젊은 사람에겐 우울감, 나이 든 사람에겐 알츠하이머병과 관련 있다.

■연결된 사회적 거리 두기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해서 거리 두기를 멈출 수는 없다. 코로나는 많은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리 두기가 지켜지는 상황에서 사회적 경험을 제공해줄 기술적, 제도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스카이프나 줌(Zoom) 같은 영상 교류는 음성만을 사용하는 전화 통화나, 글자만 사용하는 문자, e메일보다 훨씬 더 대면 만남에 가까운 만족도를 준다고 한다. 또 화상 미팅은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교류를 할 때와 비슷한 뇌 부위들을 활성화시킨다고 한다. 영상회의가 더 빠른 데이터 전송을 요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의 인터넷 속도가 빠르고 작년부터 5G가 확대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브즈독(Bzdok)과 던바(Dunbar)는 이달 출간한 논문에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친구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모임을 만드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청소년에게 사회적인 경험이 특히 중요함을 생각할 때, 코로나로 인한 교육 격차를 메꾸는 것만큼이나 학생들에게 사회적 교류를 늘려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장기적인 전쟁, 기근, 전염병 등 온갖 재난 속에서도 협력을 통해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이다. 과거인들이 어떻게 오래 지속되는 심리적, 경제적 고통을 이겨냈는지에 대한 역사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과거인들보다 나은 제도와 기술도 가지고 있다. 제약이 적지 않지만, 가지고 있는 자원을 충실히 활용해서 새로 길을 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거리 두기를 지키는 한도에서 온·오프라인으로 최대한 사람들을 만나고, 햇볕을 쬐면서 오늘 하루를 보내시기를.

송민령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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