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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만물상] 배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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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바그다드 부근에서 독일 고고학자 빌헬름 쾨니히가 주둥이를 아스팔트로 메운 높이 15㎝ 정도의 단지를 발견했다. 진흙으로 구운 단지에는 녹슨 철 막대가 들어 있었다. 쾨니히는 이것이 고대인의 배터리(전지)라고 생각했다. 전지란 전기가 담겨 있는 연못이란 뜻이다. 쾨니히가 이 단지에 전기를 띤 입자가 오갈 수 있는 산성 용액을 넣고 작은 전구를 연결했더니 밝게 빛났다고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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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는 금속이 산성 용액 속에서 산화하면서 전자를 내놓아 전류가 발생하는 원리이다. 초등학교에서 배운 레몬 배터리를 생각하면 된다. 레몬에 아연 판과 구리 판을 꽂고 그 사이에 전구를 단다. 그러면 아연이 레몬의 산성에 산화하면서 발생한 전자가 구리로 이동하면서 전구의 불을 밝힌다. 고대인도 같은 방법을 썼을 것이다.

▶충전까지 가능한 배터리를 2차전지라고 한다. 최초의 2차전지는 1859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가스통 플랑테가 발명한 납축전지이다. 이 납축전지를 사용한 전기자동차가 1873년 개발됐다. 독일의 벤츠가 휘발유 자동차를 발명한 1885년보다 앞섰다. 전기자동차는 화석연료를 태워 동력을 얻는 엔진이 필요 없다. 구조가 단순한 만큼 가격도 쌌다. 사람들이 꺼리는 휘발유 냄새도 안 났다. 하지만 전기자동차는 1912년 생산 대수 최고치를 기록하고 점차 쇠퇴했다. 그 자리는 대량생산 체계를 도입해 가격을 절반으로 낮춘 포드의 가솔린 자동차가 차지했다.

▶전기자동차의 몰락은 배터리 성능 때문이었다. 전기자동차는 배터리 성능의 한계로 주행거리가 짧았다. 충전도 오래 걸렸고 값도 비쌌다. 21세기 들어 테슬라를 필두로 전기자동차가 다시 부상한 것은 과거보다 가볍고 강한 리튬이온 배터리 덕분이다. 작년 노벨 화학상도 일본 소니가 처음 시판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탄생시킨 개발자들에게 돌아갔다.

▶22일(현지 시각)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500억달러(약 58조원) 증발했다. 배터리 발표 연례행사에서 새로운 기술 성과를 공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류는 경이적인 과학적 발전을 이룩해왔지만 배터리 분야의 혁신은 더딘 편이다. 천재 소리를 듣는 테슬라 창업주 머스크에게도 배터리 혁신은 어려운 모양이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두 가지다. 액체 전해질이 새더라도 폭발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한 번 충전으로 장거리 운행이 가능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배터리의 기술적 한계는 언젠가는 해결될 것으로 본다. 문제는 배터리 혁신 속도가 시장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느냐는 점일 것이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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