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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사설] 100억이면 코스닥 기업 어디든 공격 가능, 이게 ‘공정경제’는 아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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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주 의결권을 3% 이내로 묶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도가 민주당 방침대로 실시되면 상당수 대기업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원하는 감사위원이 뽑힐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 지분이 많으면 기업들이 경영권 위기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아예 투기자본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안뿐 아니다. 지금까지는 소수주주가 임시주총 소집이나 이사·감사 해임 청구, 회계장부 열람 청구 등의 권한을 행사하려면 ‘6개월 이상 주식 의무 보유’ 요건을 채워야 했다. 5년 전 삼성물산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격을 겨우 방어한 것도 엘리엇이 삼성물산 주식 보유 기간 6개월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법을 바꾸면 ‘6개월 보유’라는 최후의 방어 장치마저 없어지게 된다. 언제든 주식 3%만 모으면 사흘 만에 소수주주권으로 기업을 공격할 수 있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코스닥 기업들도 공격 대상이 된다. 100억원이면 코스닥 상장사의 85%인 1170곳을 노릴 수 있다. 정부가 혁신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신기술 벤처기업들부터 사냥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 진단키트 개발로 시가총액 6조원의 바이오기업으로 성장한 씨젠도 특정 세력이 2000억원만 모으면 경영권을 넘볼 수 있다. 이러니 기업들이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본체만체한다. 야당도 기업의 호소를 반영한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기업들이 방어 수단을 잃어버리면 사업 확장·발전보다는 경영권 지키기가 최우선 과제가 된다. 누구에게 도움이 되나. 이것이 경제 민주화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정부가 “경제 전시 상황”이라고 할 정도로 경제 위기 국면이다. 어제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정유, 화학, 철강, 자동차 등 주요 업종의 한국 기업 실적 부진을 경고하고 향후 1년간 부정적 등급조정이 긍정적 등급조정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충격적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공정 경쟁을 촉진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뿔을 고치려다 소를 잡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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