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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팀장칼럼] 기본대출, 국책은행 이전 논란이 후진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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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금융산업의 선진화 척도로 ‘독립성’이 줄곧 거론된다. 금융은 규제산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정치권의 입김에 자주 휘둘린다. 후진국일수록 금융산업의 독립성이 무너지고 그 틈을 포퓰리즘이 비집고 들어온다. 선진국은 시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융산업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금융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위기 상황이 아니면 대체로 금융논리가 정치논리를 선도한다.

최근 금융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기본대출권’과 ‘국책은행 지방 이전’은 그래서 후진적이다. 정치인들의 입에서 시작했고 금융산업의 독립성을 흔들며 지극히 포퓰리즘적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모든 국민이 연 1~2% 금리로 1000만원 안팎의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기본대출권’ 개념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차주가 대출을 갚지 못하면 정부가 대신 갚아주겠다고도 했다. 금융업은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와의 싸움이다. 금융사는 대출금과 이자를 성실히 갚아나가는 다수의 고객을 위해 돈을 빌리고 ‘나몰라라’하는 소수의 불량고객과 사투를 벌인다. 이를 위해 대출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차주의 신용등급을 철저 분석하고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현 금융업의 최대 과제인 ‘리스크 관리’의 기본 개념이다.

그런데 정부 보증하에 신용등급과 상관 없이 전 국민에 1000만원씩 저금리로 빌려주자니, 성실한 차주마저 불량고객으로 만들 황당한 정책이다. 어떤 금융 논리에도 부합하지 않고 금융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포퓰리즘의 극치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보증을 넣어 근로자의 저리대출을 지원해주는 나라는 없다"고 꼬집었다.

국책은행 지방 이전 역시 지방 표심을 노린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에 지나지 않다. 문제는 이를 주도하는 김사열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의 독단적 인식이다.

그는 최근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어져온 금융중심지 정책을 ‘실패했다’고 단정짓고 있다. 그는 "국책은행 등 공공금융기관들은 1차 이전 때 서울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만든다는 이유로 지역으로 안 갔다. (동북아 금융허브가) 안 됐기 때문에 이제는 안 갈 수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

동북아 금융허브 로드맵은 2013년에 발표됐다. 7년이 지났음에도 한국 금융산업의 양태가 당시와 별반 다를게 없으니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들어서도 5차 금융중심지 기본계획안이 마련돼 시행 중이다. 아직 진행 중인 정책을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실패로 선언하고 국책은행을 지방으로 내려가라고 한다.

졸지에 국책은행을 지방에 내줄 처지인 금융중심지 서울은 항전 태세다. 제2금융중심지 부산의 정치인들은 이들 기관을 부산에 유치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여기에 제3금융중심지 지정을 주장하는 전북까지 국책은행 유치에 가세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이 지역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김 위원장은 국가 균형 발전 전문가도, 금융 전문가도 아니다. 정치인에 가까운 학자 출신이다. 운동권 출신이며 생물학이 전공이다. 그런 그가 금융정책 실패를 운운하며 국책은행 지방 이전을 주장하니, 포퓰리즘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금융산업이 반드시 금융 전문가의 전유물일 이유는 없다. 금융산업의 근간인 정책과 그 정책을 주도하는 리더십에는 모두 정치가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정부의 소상공인 긴급대출의 경우 반드시 필요한 제도지만 금융 논리로 보면 도입하지 않는 것이 옳다. 이런 문제는 정치 논리로 풀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치인이 금융정책에 말을 보탤 때는 그 말의 무게가 천금같이 무거워야 한다. 금융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정치가 개입해야지, 정치 논리가 우선시돼선 안된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경제는 경제 전문가에게…’ 이 대전제는 지키자.

송기영 금융팀장(rcky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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