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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소송 지형 바뀌는데 ‘보도자료 달랑 3쪽’…기습 입법예고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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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 국민참여재판, 증거 강제 제출 제도 도입 골자

재판 절차 크게 바뀌는데 법원행정처 의견 조율 없어

재판 증거 강제 제출 ‘디스커비리’ 도입 땐 소비자 소송 큰 폭 변화

헤럴드경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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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법무부가 23일 집단소송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입법안을 발표했다. 특히 민사사건에 배심원을 두거나, 증거 강제 제출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재판 절차에도 큰 변화가 예상되지만, 당사자인 법원행정처와 의견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입법안을 발표한 것이어서 향후 입법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법무부의 상법 등 입법개정안 발표 과정에는 법원행정처와의 협의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민사소송 절차에 관한 제도개선 작업은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이 실무를 맡고 있다. 법무부는 전날 평소와 다르게 별도의 브리핑 없이 A4용지 3쪽 분량의 보도자료만 언론에 배포했다. 평소 주요 정책에 관해 국장 이상급 실무진이 직접 질의응답을 받았던 전례와도 대비된다.

집단소송제 도입 범위 확대, 민사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 도입, 증거 강제 제출제도는 모두 법원행정처와 사법정책연구원에서 장기간 연구해온 내용이다. 제도가 도입되면 일선 재판 실무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 통상적으로는 법원행정처가 제도 개선안을 발표하고, 법무부가 입법예고를 하는 식으로 조율이 이뤄졌다. 법무부가 재판절차를 바꾸면서 ‘대법원 패싱’을 한 셈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입법예고 전 협의가 관행이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이번 법안처럼 재판절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안은 법원과 사전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집단소송 적용범위를 대폭 확대하면서 1심 사건에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안을 발표했다. 형사재판에서 운용되고 있는 배심원제는 국민참여재판 도입 때도 진통을 겪었던 제도다. 헌법상 판사에게 재판받을 권리가 보장되기 때문에, 최종적인 판단을 일반인이 하는 것은 헌법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현행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배심원을 두면서도 재판부에게 논의된 내용을 따로도록 강제할 수 없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배심원을 두려면 공정한 판단을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풀단’을 운영해야 한다. 일일이 재판에 관한 내용을 송달해야 하고, 배심원단 운영에 따른 경비를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대규모의 예산과 인력지원이 필요한 사안이다. 구체적인 지출규모를 산정하는 데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소송을 당한 당사자가 증거자료를 제출하도록 강제하는 ‘디스커버리 제도’ 역시 민사재판 모델을 크게 바꿔놓을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자동차나 전자기기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 소비자가 결함을 입증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전망이다. 해외의 경우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패소 간주하는 제도를 둔 나라도 있지만, 법무부는 구체적 설명 없이 ‘자료등제출명령 및 위반 시 효력 강화, 소송 전 증거조사 절차 등을 도입하겠다’고만 밝혔다.

이번 입법안에 관해서는 법원행정처 뿐만 아니라 대한변호사협회 등 법조직역단체에서도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무부가 ‘기습 입법 예고’를 한 배경에 대해서는 개각일정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에 따르면 청와대는 최근 중폭 이상의 개각을 전제로 장관 후보군에 대한 인사검증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아들 군무이탈 의혹이 불거진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이번 개각을 통해 자연스럽게 교체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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