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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샹송의 신’ 쥘리에트 그레코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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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살까지 활동한 대표적 샹송 가수…향년 93

전후 파리의 지성계와 대중문화에서 아이콘으로

<파리의 하늘 밑> 등으로 ‘샹송의 국제화’ 기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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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중가요의 상징이던 쥘리에트 그레코가 23일 93살의 나이로 별세했다.

가족들은 이날 성명에서 “쥘리에트 그레코가 자택에서 사랑하던 가족들에 둘러싸여 숨을 거뒀다. 그의 생애는 누구도 닮을 수 없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성명은 뇌일혈로 노래를 그만둔 “89살의 나이에도 그는 프랑스 노래들을 빛나게 했다”고 말했다.

<파리의 하늘 밑> 등 수많은 명곡을 부른 그레코는, 2차대전 뒤 영·미 계통의 팝송과 함께 프랑스의 샹송을 세계적인 대중가요로 즐기게 만든 가수 중의 하나였다.

1927년 태어난 그레코는 2차대전 때 나치에 의해 수감된 뒤 석방돼, 전후 파리에서 지하 클럽과 카페에서 공연하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검은 옷을 즐겨입은 그는 우수에 찬 음조로 전후 파리의 폐허에서 다시 부흥한 프랑스 지성계의 장 폴 사르트르나 알베르 카뮈 등 철학자와 작가들의 음유시인으로 등극했다. 그레코는 또 장 콕토 감독, 잉글리드 버그먼, 오손 웰스 등 당대의 영화인들과 함께 공연한 배우로도 활약했다.

그는 1951년 영화 <파리의 하늘 밑>의 동명 주제가를 나중에 다시 불러, 이 노래를 파리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중가요로 만들었다. 그는 1960년대 중반에 텔레비전 드라마 <벨페고르>에서 조현병 환자로 출연해 열연하며 명성이 절정에 올랐다.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올려, 1967년 독일 베를린 공연에서 당시에는 기록적인 관중인 6만명을 동원했다.

그는 78살이었던 2005년에도 앨범을 내는 등 계속 활동하다가, 89살이던 지난 2016년 고별 공연 뒤부터 공연을 중단했다. 그레코는 3번 결혼했고, 재즈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와도 오랜 염문을 유지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그레코가 “프랑스 샹송의 만신전에 자리잡았다”며 전후 급진적이고 세련된 파리에서 주도적인 문화계 인사였다고 그레코를 상찬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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