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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이종우의 경제읽기]美 Fed '제로금리' 선언…정부에 공격적 재정정책 필요성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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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보다 하락이 더 위험

중앙은행, 정부에 주도권 주고 경제활력 살리기 안간힘

정부, 점진적 물가 상승 통한 경제 성장화 시나리오 꿈꾸지만 저금리 지속 땐 버블붕괴 우려

아시아경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정책 방향을 바꿨다. 연간 물가 상승률이 2%를 넘으면 금리를 올려 물가 상승을 막는대신 일시적으로 2%를 넘더라도 지속적인 물가상승 압력이 없을 경우 금리를 올리거나 통화를 줄이는 정책을 쓰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했다.


Fed가 정책을 바꾼 근거는 둘이다. 하나는 지금 경제 상황에서는 물가 상승보다 하락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가가 적정 수준을 밑돌 경우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약해져 이후 물가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 상태가 계속되면 결국 물가가 내려가는 디플레이션이 발전하게 된다. 물가하락은 상승보다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인플레는 영향이 가계에 집중되는 반면 디플레는 경제 전체를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그런 경우다. 10여년 넘게 물가가 하락하거나 미미한 상승에 그치다 보니 경제의 활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기업은 10년 전보다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팔아야 해 수익이 나빠졌고 가계는 물건값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어 소비를 뒤로 미뤘다. 모두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변화인데 이런 우려를 무시하고 물가를 낮출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또 하나는 앞으로 고용이 나아져도 물가가 오르지 않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 중반으로 떨어져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데 굳이 물가 상승에 대응해 금리를 올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것이다.


Fed가 물가를 정책 목표로 삼은 것은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으니 앞으로는 정부 책임 아래 경제 정책을 펴나가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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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높을 때에는 중앙은행의 힘이 세지는 게 일반적이다.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를 잡을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어서다. 정부는 금리 상승으로 국채를 발행할 때 물어야 하는 이자 부담이 커져 공격적인 재정 정책을 펼 수 없다.


반면 물가가 낮은 때에는 정부가 정책 주도권을 갖게 된다. 물가가 낮아 저금리가 된 상태에서는 중앙은행이 금리를 더 낮추더라도 성과를 내기 힘들다. 기업을 포함한 경제주체들이 이미 저금리에 익숙해져 그 공백을 재정정책이 메울 수 밖에 없다. 이때 중앙은행은 자기들이 정책 시행 전면에 나서지 않고 금리 인하를 통해 정부의 부채부담을 낮춰주는 쪽을 택한다. 부채부담이 줄어야 정부가 강한 정책을 쓸 수 있기 때문인데 정부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금은 국내외 어디든 정부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이전에는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와 유동성 확대를 통해 정책을 주도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중앙은행이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어 직접 나서지 않고 정부에 더 큰 역할을 주문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이미 선진국 중앙은행 인사들의 발언에서 감지됐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여러 차례 연설을 통해 부채증가를 걱정하지 말고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라고 얘기했었다.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도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부는 점진적인 물가 상승을 통해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가 끝나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점진적 물가 상승은 경제가 정상이 찾아가는 과정일 뿐 아니라 정책 효과를 크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금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시장에서 형성된 금리보다 여기에서 물가 상승 부분을 제외한 실질금리에 의해 결정된다. 명목금리가 그대로여도 물가가 높을 경우 실질금리가 낮아져 완화 효과를 더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정부가 질병으로 줄어든 가계소득을 재정을 통해 메워주고 고용 증가에 적극 나서더라도 실질 금리가 떨어지지 않으면 효과를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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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기대와 달리 물가 상승보다 하락 압력이 커지고 있다. 경기 침체로 수요가 약해졌기 때문인데 물가가 내려가면 정부와 기업이 가지고 있는 부채의 실제 가치가 상승한다. 이 상황을 막고 정부와 기업의 이자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서라도 중앙은행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쓰게 된다. 눈앞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극단적인 정책 사용까지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릴 경우 경제 정상화는더 멀어진다. 마이너스 금리로 이자소득이 줄고 물가 하락을 염두에 둔 소비 둔화가 나타나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이 그런 상태다. 스위스에서 시작된 마이너스 금리가 독일, 프랑스 등 여러 나라로 번졌다.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으로 10년 가까이 우호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성장률이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하지 않을 때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마이너스 금리는 금융 안정성을 낮추고 자산 버블을 발생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할 경우 저축자는 물가보다 낮은 금리를 받게 된다. 우리나 일본처럼 저축으로 생활하는 고령자가 많을 경우 악영향이 커진다. 고령자가 소비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이들의 수익이 줄어 경제가 활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저축이 줄어드는 대신 위험 자산 투자가 늘어나는 계기가 된다. 물가 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리를 받느니 다른 투자자산에 돈을 넣어 더 큰 이익을 보자는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저금리가 10년 넘게 계속되면서 이자 소득에 대한 기대가 줄고 부동산과 주식에 대한 투자가 늘었다.


문제는 자금 이동이 끝나고 난 후다. 경제가 자산 가격 상승을 뒷받침해줄 정도로 좋지 않을 경우 버블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 자산 가격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돈의 힘으로 올라가는 걸 버블이라고 하는데 과거에 가격이 유지됐던 사례가 없다.


Fed를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들도 낮은 금리가 금융 안정성을 해치고 자산가격 버블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저금리 정책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금융 안정을 위해 금리를 건드릴 경우 경제가 더 크게 나빠질 수 있어서다. 그래서 정부와 중앙은행 모두 유동성을 줄이고 금리를 올리는 대신 규제나 세금을 통해 자산 가격을 통제하는 소극적 방법만을 쓰고 있다. 저금리정책을 시행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금융 안정성이 더 나빠지고 민간의 효율적 투자도 해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선진국 정부가이 국면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기 위해 온갖 성장 정책을 다 썼지만 아직은 성과를 보지 못했다.



송화정 기자 pancak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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