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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성제환 메디치家 리더십] (22) 절대 권력에 올라선 로렌초 | 천문학·철학 끌어들여 로렌초 우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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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가 어쩔 수 없이 폭군을 지도자로 모셔야 한다면, 로렌초보다 더 낫거나 더 재밌는 폭군이 어디 있을까?”

당시 정치사상가이자 역사가였던 구이치아르디니(Francesco Guicciardini)는 로렌초를 폭군으로 봤다. 로렌초가 빵과 놀이를 공급해주자 일반 시민들은 30대 초반 로렌초를 도시 영주로 받아들이고, 독재정치를 용서했다. 이들은 세속의 존귀한 권위 뒤에 초월적인 힘이 있을 거라고 쉽게 믿었다. 로렌초 후원을 받고 있던 인문학자들 역시 로렌초 권력을 초자연적 힘과 결부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일종의 지도자 우상화 작업이다. 중세시대 군주가 교황이 건네준 성유(聖油)를 바르고 왕관을 쓰고 신성한 존재로 자리매김해왔던 것처럼. 하지만 교황과 척을 진 로렌초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권력을 신성화해야 했다.

로렌초 측근 인문학자들은 점성술과 화려했던 고대 로마제국에서 영웅주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이제 기독교 신앙은 뒤로 물리고, 신비주의를 띤 점성술,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가 찬란하게 꽃을 피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 편의 멋진 연극이 피렌체에 펼쳐진다.

연극 제목은 지도자 우상화, 주연은 로렌초, 시나리오는 철학자 피치노, 로렌초 총애를 받던 화가 보티첼리는 무대 배경을 장식한다. 당시 점성술과 고대 로마신화는 이단으로 여겨지던 시절이다. 하지만 로렌초와 측근 인문학자들은 천년을 이어온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는 지혜와 용기를 발휘했다. 점성술과 고대 문화(철학)는 뜻하지 않게 새로운 시대, 근대의 문을 여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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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나부오니(Tornabuoni)가문의 예배당을 장식하고 있는 작품 중, ‘사가랴에게 나타난 천사’ 중에서 묘사된 플라톤 아카데미 학자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 1448~1494년) 작품, 1485~1490년, 왼쪽부터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1499년), 크리스토포로 란디노(Cristoforo Landino, 1428~1498년), 안젤로 폴리치아노(Angelo Poliziano, 1454~1494년), 젠틸레 데 베키(Gentile de` Becchi, 1425~1497년)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수도원(Basilica of Santa Maria Novella) 성당,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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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家 리더십 ➊

▷피렌체 번영은 로렌초가 건설한다

당대 인문학자 리더 격인 피치노는 인간은 명상적인 삶을 통해 우주에 있는 행성들로부터 받는 기운을 조절할 수 있다는 책(삶에 대한 세 권의 책·De vita libri tres)을 펴냈다. 로렌초 측근 인문학자들은 신비주의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7개 행성의 축제(당시 육안으로는 토성까지 7개의 행성만 볼 수 있었다)’를 주관하는 단체를 조직했다. 로렌초는 이 단체를 후원하는 책임자로 장남을 임명했다. 피사대에 점성술학과까지 신설하도록 했다. 로렌초의 강력한 후원으로 로렌초 측근 인문학자들은 밤하늘을 밝히는 별들을 관찰하는 점성술에 빠져든다. 피렌체에는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 피렌체의 전통적인 종교 축제인 세례자 요한 축제에 ‘7개 행성의 축제’를 끼워 넣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우주의 신비한 기운으로 피렌체에 평화와 번영이 오기를 기리는 축제였다. 하지만 이내 로렌초를 우상화하는 축제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1491년에 열린 ‘7개 행성의 축제’ 기록에는 “로렌초는 행성들의 축제를 주관하는 단체를 후원해, 자신만의 가상 공간을 연출해냈다. 그리고 파울루스 장군(Lucius Aemilius Paullus Macedonicus, AD 229~AD 160년)은 40~50년 동안 사람들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로마가 지탱될 수 있을 만큼의 보물을 마차 15대에 실어 도시로 갖고 돌아왔다. 이전에는 누구도 이만큼의 보물을 가져온 적이 없었다”고 쓰여 있다.

파울루스 장군은 마케도니아 왕국을 멸망시킨 뒤, 마차 250대에 전리품을 가득 싣고 돌아와 로마에 번영을 가져온 장군이다. 축제에 파울루스 장군을 등장시킨 배경에 피렌체 번영은 로렌초에 의해 건설될 것이라는 믿음을 전파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중세시대 군주는 성유를 바름으로써 신성을 얻었지만, 교황과 척을 진 로렌초에게 지도자의 신성함을 어떻게 씌워야 할까? 화가 보티첼리의 작품 ‘봄: Primavera’에 그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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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Primavera),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년) 작품, 1482년경, 우피치 미술관 소장,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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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家 리더십 ➋

▷로렌초 권력은 신 제우스가 부여한 신성한 것

화가 보티첼리는 작품 맨 오른쪽에 요정을 겁탈한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미안한 마음에서 요정을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신시켜준다는 신화 내용을 그려 넣었다. 서풍이 불면 이탈리아에는 봄이 온다. 이 장면은 긴 어둠의 세월이 가고 꽃의 도시 피렌체에 봄, 즉 번영이 도래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그렇다면 피렌체에 번영을 가져오는 지도자는 누구일까? 작품 맨 왼쪽을 보면, 신 제우스의 전령인 헤르메스가 지팡이를 쳐들어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가르는 형상이 그려져 있다. 이 형상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이 장면은 베르길리우스가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신격화하기 위해서 평생을 바친 장편 대서사시 ‘아이네이스: Aeneis’ 중 한 구절을 형상화한 것이다. 신 제우스는 주인공 아이네아스에게 로마를 건설하라는 임무를 부여한다(아이네아스 후손이 로마 국가를 창설한 로물루스 형제다). 그러나 아이네아스는 이탈리아 항해 중 카르타고에 불시착해 디도 여왕과 사랑에 빠져 로마 건설 임무는 까맣게 잊고 지낸다. 화가 난 신 제우스는 전령 헤르메스를 보내 아이네아스에게 로마로 떠날 것을 명한다. 이 장면에서 제우스는 전령에게 지팡이를 건네준다. 이 구절만 짤막하게 인용해본다.

“헤르메스는 신 제우스 명령에 복종할 채비를 했다. 그리고 지팡이를 들었다. 이 지팡이는 지옥에 있는 자를 살리고, 눈먼 자의 눈도 뜨게 한다. 그는 이 지팡이 힘으로 먹구름을 헤치고 나아갔다.”

전령 헤르메스가 들고 있는 지팡이는 신 제우스로부터 부여받은 절대 권력을 의미한다. 화가는 전령 헤르메스를 로렌초로 도치하기 위해 전령이 찬 칼집에 메디치 가문 문장을 새겨 넣었다. 이제 이 그림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명확해진다. 피렌체에 번영을 가져올 지도자는 바로 로렌초라는 사실이다.

마법의 지팡이를 쥔 로렌초는 교황이 아니라 신 제우스로부터 절대 권력을 부여받았음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로렌초와 측근 정치인, 그리고 인문학자들의 회합 장소인 카스텔로 별장 응접실을 장식했던 그림이다. 측근들은 회합 때마다 이 작품을 보며 로렌초 권력을 신성시했고 우상화해 나갔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로렌초가 적극적으로 후원한 점성술은 근대 과학을 여는 매우 중요한 첫걸음이 된다. 중세시대에 우주는 일곱 천사들의 영역이라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점성술이 등장하며 우주는 이제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관찰의 대상으로 바뀐다. 이어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 특히 합리성을 중시하는 플라톤 철학이 발전한다.

관찰하는 과학 방식과 합리주의는 뉴턴의 물리학,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철학에 그대로 이어진다. 로렌초 후원으로 근대를 여는 초석이 마련된다. 중세 천년을 지속해온 신앙과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지혜롭고 용감한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해주는 역사적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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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제환 medici60@naver.com 석좌교수·JB문화공간 대표]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77호·추석합본호 (2020.09.23~10.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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