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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세계와우리] 韓·日관계 재설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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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전략경쟁 폭풍우 몰아쳐

韓·日, 모두 독자적 대응에 한계

대립 관계 이어가면 ‘양패구상’

文대통령의 결단 필요한 시점

미·중 전략경쟁의 폭풍우가 거세다. 천하질서의 판도 바뀌고 있다. 국제관계는 다시 각자도생의 정글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모든 국가가 미·중 전략경쟁의 ‘폭풍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비록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기는 하지만 일본도 이 폭풍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세계 2위인 중국의 경제규모는 이미 일본의 3배에 달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 중국의 급속한 부상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의 대외정책은 세계에서 가장 충실한 미국 동맹으로 인식될 정도로 미·일 동맹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미국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쿼드(미·일·인·호) 협력을 구축하고자 노력하였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포기한 대중 지역경제협력체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이어받아 포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배제하기 위해 제기한 가치에 기반한 경제협력 구상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의 참여에도 적극적이다.

세계일보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


일본 외교의 또 다른 일면은 실용주의에 있다. 미·중 전략경쟁이 강화되는 와중에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2018년 10월 500여명의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하였다.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과 과실이라는 실리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동아시아 배치로 인한 중국과 전면적인 군사 갈등은 일본으로서도 수용하기 버겁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국제정치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나라였고 냉정하다. 항상 당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와 협력하였다.

중국의 부상이 심화할수록, 미·중 간의 전략경쟁이 혼탁해질수록 일본의 고민은 깊어 갈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국제질서의 변화에 민감하고, 실용적으로 대응해왔던 일본의 전통은 내심 다양한 시나리오에 기반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할 것이다. 일본이 아무리 세계 3위의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미·중 전략경쟁의 상황에서 단독으로 한 축을 형성하기에는 국력 격차가 너무 크다. 당장은 중국과 손잡기도 어렵다. 일본보다 더 국력에서 크게 뒤지는 한국은 스스로 미·중 전략경쟁의 변수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폐해와 선택의 압력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남북 협력에 입각한 타개 전략은 이 외생변수에 무기력하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조차도 모두 양자택일 방식으로는 답이 안 나오는 국면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일은 운명공동체이다.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폭풍 속에서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피해자로 전락하는 것을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자율성과 존엄을 지켜내야 하고, 경제발전도 유지해야 한다. 한국으로서는 그 최소한의 조건이 스스로 버텨낼 국방역량 확보와 대일관계의 개선에 달려 있다. 그리고 미·중 전략경쟁 상황에서 각자도생의 국면에 처한 나머지 모든 국가와 여하히 협력해 제3의 공간을 창출하는가도 중요하다. 이는 한국이나 일본 단독으로는 할 수 없다. 이미 빠져나오기 어려운 치킨게임에 들어간 미·중을 돕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국제적인 노력은 필요하다.

절체절명으로 다가오는 국가적인 위기와 도전 앞에서, 한·일이 역사 갈등으로 인해 대립적인 관계로 귀착된다면 양패구상이다. 일본도 선택지가 크게 좁아진다. 상호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전략적인 지혜를 모아 미·중 전략경쟁의 폐해에 공동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양국의 미래가 더 암담하다. 일본은 스가 요시히데 체제로 바뀌었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자.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꿈꾸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혜를 담아내는 것이 한·일 모두가 전략적 지렛대를 확보하고, 미·중 전략경쟁의 폭풍우에서 항해하는 최소조건이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왔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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