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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상부지시 받은뒤 처형하듯 총살… 수십L 기름붓고 40분 불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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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우리 국민 사살]

北, 실종 다음날 NLL 인근서 발견… 탈진한 표류자 바다에 방치

방독면 쓴채 신문… 6시간뒤 총쏴, 훼손한 시신 수습도 않고 현장 떠나

평양 지시 기다리느라 지체 가능성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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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 이모 씨가 북한군에 의해 총살된 뒤 시신까지 불태워져 바다에 버려진 것으로 드러나면서 북한 정권의 잔학성에 대한 공분이 거세지고 있다. 북한 지도부의 승인이나 묵인 아래 우리 국민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대남 불만을 표출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 ‘상부 지시’로 처형 후 시신에 기름 붓고 불태워

군에 따르면 이 씨는 21일 오전 11시 30분경 소연평도 해상의 어업지도선에서 실종된 뒤 다음 날(22일) 오후 3시 반경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에 발견됐다. 군 관계자는 “당시 이 씨는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1명이 탈 수 있는 규모의 부유물을 붙잡고 있었다”고 전했다. 최초 실종 직후 28시간 동안 수온이 낮아진 바다를 표류하면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북측 인원들은 방독면과 방호복을 착용한 채로 바다에 떠 있는 이 씨와 일정 간격을 유지하면서 표류 경위와 월북 진술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군은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로 이 씨를 건져 올리지 않은 채 신문을 한 것이다.

이후로도 북측은 이 씨를 바다에 방치하면서 구조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어 오후 9시 40분경 ‘타타탕’ 하는 총성이 칠흑 같은 밤바다의 정적을 갈랐다. 현장 인근에 도착한 북한 단속정에서 갑자기 이 씨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한 것. 장시간 표류로 기력이 다한 그는 아무런 저항도 못 한 채 사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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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관계자는 “오후 9시경 상부에서 (사격) 지시가 내려진 뒤 북측은 이 씨를 향해 총격을 가한 걸로 파악됐다”면서 “총격에 사용한 총기 종류와 사격 발수는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 단속정에는 개인화기로 무장한 10여 명의 북한군이 탑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은 2000년대 초반부터 AK―74 소총을 개인 기본 화기로 운용하고 있다. 기존의 소련제 AK―47 소총보다 관통력과 사거리가 개량된 기종이다. 군 소식통은 “북한군이 이 씨를 해상에서 ‘즉결 처형’하는 데도 같은 소총을 사용했을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의 반인륜적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북측 인원들은 오후 10시경 총격으로 사망한 이 씨의 시신에 접근한 뒤 기름을 붓고 불태우기까지 했다. 오후 10시 11분경 북측 현장에서 20km 이상 떨어진 연평도의 우리 군 감시장비에도 시신을 불태우는 불빛이 포착됐다고 한다. 군 소식통은 “아군 관측 장비에 시신을 훼손하는 불빛이 40분간 잡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불빛이 지속된 시간과 우리 군에 관측된 거리 등을 고려해 볼 때 최소 수십 L의 기름을 이 씨의 몸에 붓고 불을 질러 시신을 훼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북측은 이 씨의 시신을 수습하지 않은 채 현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 김여정 등 북 수뇌부 지시했나

이번 만행을 저지른 북한군은 해군 소속이라고 군은 설명했다. 남포에 있는 서해함대사령부 예하의 말단 부대라는 얘기다. 서해함대사는 6개 전대에 420여 척의 함정을 운용하고 있고, 그중 60%가량을 NLL 인근에 전진 배치하고 있다.

북한군이 ‘상부 지시’에 따라 이 씨를 총살하고 시신을 훼손했다는 군의 발표로 미뤄 볼 때 최소한 서해함대사 이상의 지휘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이 씨를 최초 발견하고 처형하기까지 6시간이나 걸렸다는 점에서 평양의 총참모부나 최고수뇌부의 지시를 기다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선 대남 총책으로 올라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까지 보고를 받았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코로나19 유입을 막기 위해 북―중 접경뿐만 아니라 NLL 등 남북 접경도 무단 월경 발견 시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도 북한이 코로나19 유입 차단을 위해 중국과의 국경에 특수부대를 배치해 무단으로 넘어올 경우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 군은 이런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코로나19가 북한군 경계작전에 미칠 파장을 우리 군이 간과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북 정보 판단에 허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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