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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위대한 여성 예술가…“가리려 해도 지워지지 않을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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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수잔 발라동, <파란방>, 1923년, 캔버스에 유화, 파리 퐁피두센터 내 국립현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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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여성 예술가들


파이돈 편집부·리베카 모릴 지음, 진주 K. 가디너 옮김/을유문화사·5만8000원

중국에서 태어나 열네 살에 부모를 잃었다. 강제로 ‘사창가’에서 일했다. 어느 날 한 부자가 그를 빼내 ‘첩’으로 삼았다. 이후 예술에 눈을 떴고,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떠나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유화를 재료 삼아 중국 수묵화의 미학을 담는 그의 ‘하이브리드적’ 회화는 유럽에서는 열렬히 환호 받았다. 그러나 정작 고국 중국에서는 격렬한 비판에 시달렸다. 자신과 중국 여성의 누드화와 초상화를 주로 그렸던 그의 그림이 보수적인 중국 사회에서는 거부감을 일으킨 것이다. 중국의 ‘프리다 칼로’이자,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화혼>의 실제 주인공, 판 위량 이야기다.

한겨레

새 책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에는 판 위량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작가의 이름과 일대기가 담겨 있다. 자그마치 500년, 400여명이나 된다.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쓴 <서양미술사> 초판에는 여성 작가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책의 존재 의의를 알려준다.

책은 여성 예술가의 작품을 대규모로 기록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창작 활동을 기념한다.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에 나오는 이름이 수많은 남성 예술가만큼 알려지며 작품 제작자의 성별을 물을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우리는 독자들이 위대함에 대한 좁고 편협한 정의를 떨쳐보내는 한편 잊히거나 간과되거나 과소평가되어 온 이 책 속 예술가들의 위대함을 인정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도록 도울 것이다.” 이 책의 편집자 리베카 모릴의 말이다.

기억하는 일만큼 어떻게 기억하냐도 중요할 것이다. 흔히 연대기 구성으로 짜인 보통의 예술사와 다르게 이 책은 알파벳 이름 순서대로 예술가를 분류했다. 누가 예술의 본류이고, 어떤 이가 더 위대한 작가인지 구분할 필요 없다. 마음가는 대로 책을 펼치면 된다. 아방가르드 화풍의 류보프 포포바, 재료 회화의 하워디나 핀델, 비디오 아트의 조앤 조나스, 후기인상주의의 수잔 발라동. 500년 미술사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만난 작가들이다. 책 끝에 나오는 용어사전에서는 간략한 예술 상식도 접할 수 있다.

책을 덮으니 표지에는 ‘WOMEN’라는 단어를 선명한 분홍 줄이 가리고 있다. “가리려 해도 이제 더 이상 지워지지 않을 그들” 이 책을 본 타이포그래피 전문가 유지원의 평이다. 가려졌지만 지워지지 않은 그들을 기억할 책임은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들의 작품을 보고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일. 이 책은 누구나 그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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