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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레즈비언 커플들의 생활과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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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너라는 생활

김혜진 지음/문학동네·1만3500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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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사진)의 소설집 <너라는 생활>은 그의 장편 <딸에 대하여>와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딸에 대하여>가 동성애자 딸과 그 어머니의 갈등과 화해 과정을 다룬다면, <너라는 생활>에 실린 여러 단편들은 여성 동성애 커플 내의 긴장과 알력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편견을 그린다.

<어비>(2016)에 이은 김혜진의 두 번째 소설집 <너라는 생활>에는 모두 여덟 단편이 실렸는데, 이 가운데 적어도 넷이 여성 동성애 커플 이야기다. 마지막 수록작 ‘팔복광장’의 동거하는 커플 역시,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레즈비언일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 소설집의 수록작 모두가 ‘너’라는 이인칭을 구사한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다만 ‘너’를 관찰하고 ‘너’와 관계를 맺는 일인칭 ‘나’ 역시 등장한다는 점에서 완전한 이인칭 소설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단편 ‘동네 사람’에서 레즈비언 커플은 사소한 자동차 사고 때문에 동네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된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고 싶었지만, “어디에나 눈들이 있고 고개를 돌리면 나를, 너를 빤히 바라보는 눈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이들을 괴롭힌다. “우리가 함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해 살던 집의 계약기간이 끝났을 때 부동산 사람은 “집주인이 이제 신분이 좀 확실한 사람들한테 세를 놓고 싶어한다”고 말하지 않았겠는가.

‘자정 무렵’의 커플이 만난 이들은 “여기서는 편하게 생각해도 돼요”라며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배려”를 강조한다. ‘아는 언니’에서도 레즈비언 커플과 친하게 지내는 이성애자 언니는 불쑥 “근데 너희 둘은 어떻게 만난 거야?”라며 호의를 가장한 호기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게 호의든, 배려든, 친절이든, 호기심이든 뭐든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욕을 당한 것처럼 불쾌했다.”

이 소설들에서 화자인 ‘나’가 좀 더 조심스럽고 비판적인 데 반해, 그의 파트너인 ‘너’는 대책 없이 착하고 타인들에게 우호적이지만 생활력은 떨어지는 편이다. 그런 성격의 차이와 생계의 문제가 결부되어 커플들은 크고 작은 위기에 처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생활”을 계속 이어 가거나(‘너라는 생활’, ‘자정 무렵’), 결국 헤어지거나(‘아는 언니’, ‘팔복광장’) 한다.

‘3구역, 1구역’은 재개발 구역에서 길고양이를 챙기다가 만난 두 여성을 통해 계급과 세계관의 “간극”과 “격차”를 그린 작품. “어떻게 해도 너라는 사람을 다 알 수는 없겠구나” 하는 ‘나’의 생각은 이 작품의 결론이자 이 이인칭 소설집 전체의 주제라 할 수도 있겠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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