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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도서정가제 ‘개악’ 추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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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백원근의 출판풍향계

한겨레

도서정가제 시행 첫날인 지난 2014년 11월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도서정가제 시행안내문이 붙어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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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를 지키던 동네책방 ‘책방이음’ 조진석 대표가 최근 폐점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우리나라 평균적인 서점에서는 노른자위 품목인 학습참고서를 취급하지 않고, 팔리지 않는 인문·사회과학책 중심으로 어렵게 유지하던 이 서점의 발목을 잡은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임대료 부담이었다. 올해 들어서는 코로나19로 손님이 거의 없을 만큼 뚝 줄었지만 임대료는 꼬박꼬박 나가니 더 버티기 어려웠다고 한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 중인 도서정가제 ‘개악’ 움직임도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요즘 수많은 소상공인들이 겪는 신산한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보통의 가게 한 곳이 문을 닫는 것보다 훨씬 더한 상실감이 드는 것은 유별난 그의 삶 때문이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월급 한 번 제대로 가져가지 않고 1억 원 이상의 수익을 공익을 위해 전액 기부했다. 책방에서 수시로 도서 특별전시회나 각종 책 모임을 여는 한편 여러 시민단체들을 힘껏 후원했고, 베트남전쟁 피해자를 돕는 지원 사업도 다각도로 펼쳤다. 나 하나 먹고 살기조차 힘든 세상에서 그의 이타적인 삶에 머리가 숙여진다.

조진석 대표는 다른 여느 서점인들처럼 동네책방이 생존하려면 완전한 도서정가제가 필수적이라고 말해 왔다. 하지만 책의 생산·판매·소비와 관련된 단체들이 모인 민관 협의체에서 지난 1년간 논의해서 합의한 도서정가제의 ‘현행 유지’ 결정을 문화체육관광부가 재검토하겠다고 밝히자 ‘개악’은 안 된다며 누구보다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방방곡곡 동네서점들의 모임인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사무국장으로서 청와대 앞 1인 시위에 나섰다.

현실은 아직까지 그의 편이 아니다. 지난주 문화체육관광부는 36개 단체가 참여한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 대표단과의 간담회에서 정가제 적용 기한 설정, 전자책에 대한 정가제 적용 범위 조정안 등을 거듭 밝혔다. 하지만 이는 오로지 할인 적용 범위의 확대에만 초점을 맞춘 것으로서 책 생태계를 6년 전의 혼란 상황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현행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이후 이전과 비교해 출판사 수, 서점 수, 신간(새 책) 발행 종수가 모두 증가했다. 구간 일색이던 베스트셀러 목록은 신간 중심으로 복원되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책값 인상률은 전체 소비자 물가 상승률보다 낮았다. 현행 정가제의 순기능 덕택이다. 적어도 도서정가제를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대폭 강화하는 것이 필요함을 실증하는 출판 지표들이다. 저자, 출판사, 서점, 도서관, 독서 단체들이 한목소리로 도서정가제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거품 가격으로 할인 흉내를 내는 현행 ‘할인 권장 정가제’의 제도적 모순을 빨리 끝낼수록 침체에 빠진 책 생태계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8월 말 한국작가회의가 도서정가제 개악 반대 성명서에 밝힌 것처럼, 이 제도는 시장경쟁 논리로부터 출판 다양성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어막’이다. 모국어책들이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전국의 수많은 조진석들이 지역의 문화 공간으로 살아남도록 해야 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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