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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두꺼운 책 ‘벽돌’이라 놀리지 말고 다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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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항아리 이은혜 편집장이 쓴 ‘저자, 독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

저자와 관계 맺기, 보이지 않는 편집의 사투, 읽기의 기쁨 등 담아


한겨레

<읽는 직업>의 지은이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은 “늘 관심 있는 가난, 노인, 죽음, 불평등을 주제로 한 책도 펴내고 싶다”라고 말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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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직업

이은혜 지음/마음산책·1만4500원

“아, 불안해요. 독자, 시장 반응이 걱정되고. 그동안 내 저자들은 이 불안감을 어떻게 버텼을까. 다들 멘탈(정신력)이 강하셨나 봐요.”(웃음)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글항아리 이은혜(44) 편집장은 첫 책 <읽는 직업>을 펴낸 느낌을 이렇게 말했다. <읽는 직업>은 15년 동안 출판편집자로 일해온 그가 출판과 편집을 둘러싼 웅숭깊은 고민과 성찰을 담은 책이다.

한겨레

저자로서는 처음 인사를 하지만 그는 출판계에서는 잘 알려진 베테랑 편집자다. 인문출판사 글항아리의 창립 멤버로 그동안 인문학·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기획하고 편집했다. 올해에는 철학자 김영민의 <인간의 글쓰기 혹은 글쓰기 너머의 인간>, 대만 작가 탕누어의 <명예, 부, 권력에 관한 사색>, 중국 작가 옌롄커의 <침묵과 한숨> 등 묵직한 인문학 책을 만들었다.

“편집자라는 굉장히 매력적인 직업을 알리고 싶었어요. 처음 편집자로 일을 시작했을 땐 다른 편집자들이 ‘다시 태어나도 편집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할 때 의문이 들었어요. 다른 재밌는 직업도 많은데 왜 이 일을 또 하고 싶을까. 그런데 편집 3년 차가 지나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더군요.”

편집자는 같은 텍스트를 서너 번 거듭 읽고 저자와 끝없이 소통한다. 이 편집장은 “책을 만드는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저자와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그 사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책을 만드는 일은 곧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000쪽이 넘는 방대한 양의 두꺼운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만든다. 얇고 가벼운 에세이가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 요즘 그가 만든 책들은 두께와 무게만으로도 압도적인 느낌을 준다.

“오직 1000명의 독자만이 제가 편집한 책을 만났을 땐 딱 천 마리의 학만 접어 선물한 듯한 기분이 들어요. 그럴 땐 학을 더 이상 접을 수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가끔 ‘너희는 안 팔리는 진지한 책 내잖아’ 하는 말을 듣기도 하죠. ‘좋고 진지한 책’ 앞에 붙는 ‘안 팔리는’이라는 말이 낙인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가치와 무게가 있는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출간 마지노선’인 1000명 이상 독자를 확보할 자신이 없어 출간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책에서 그는 ‘두꺼운 책 옹호론’을 쓰기도 했다. “두꺼운 책을 ‘벽돌’이나 ‘베개’라며 놀리지 않고, 저자들이 다가가려 했던 깊고 넓은 세계에 합류하려는 이들이 최소한 2000~3000명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엄살 같아 보이기도 한다. 지난 7월에 나온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전홍진 지음)은 출간 직후 지금까지 무려 4만부가 팔려 나갔다. “편집자들한테는 베스트셀러를 냈느냐 안 냈느냐는 평가가 계속 따라다녀요. 제가 기획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내 취향이 그리 틀리지 않았구나’라는 걸 독자들에게서 입증받은 것 같고요. 반면에 내가 만든 책을 독자들이 계속 외면한다는 생각이 들면 자신감을 잃기도 합니다.”

가끔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하지만 출판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까닭은 책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는 쉴 새 없이 책을 사들이고 읽는 다독가다. 일이 끝나고도 책을 읽고 쉬는 날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일하느라 읽는 책을 제외하고도 일주일에 두 권씩은 읽게 된다. “항상 책을 읽죠. 밖에 다닐 때는 시집을 갖고 다니며 읽어요. 요즘에는 건강 관리를 하려고 너무 많이 읽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노력해야 안 읽을 수 있거든요.”(웃음)

그는 책을 많이 읽으며 저절로 파고들고 싶은 주제가 생겼다고 한다. 노년, 가난, 불평등, 죽음이다. 그래서 구술생애사 작가인 최현숙의 <할매의 탄생>을 펴내고, 죽음과 가난을 다룬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허대석), <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김미희)도 세상에 내보였다.

책을 읽고 편집을 하며 얻은 것은 “이성적 인지능력과 공감 능력”이다. “전문작가뿐 아니라 환자나 성범죄 피해자 등 다양한 처지에 있는 많은 저자들과 만나며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점점 넓어지는 것 같아요. 책을 계기로 다양한 세상의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겪어보지 않은 삶에 다가가게 된 것 같아요.”

이 책을 만들어준 편집자와는 어떤 관계였을까 물으니 “긴장됐다”고 한다. “원고를 보낸 뒤 편집자가 별 반응이 없을 땐 ‘내 원고가 재미없나?’ ‘별로 안 좋나?’ 걱정됐어요. 그렇다고 물어보지도 못하겠고.” 작가들을 만나면서 늘 배움을 얻는 편집자의 삶이지만, 이번엔 작가로서 편집자에게 한 수 배웠다고도 했다.

“‘편집자의 이력서’ 편에서 편집자의 자질을 나눌 때 ‘이런 편집자는 자질 없다’라는 단정적인 표현을 썼는데 그걸 본 편집자가 다른 의견을 제안했어요. 저도 글을 쓰면서 무심코 넘겼던 점을 편집자가 알려주니 고마웠죠.”

인터뷰가 끝날 즈음, 그는 ‘읽는 직업’ 편집자 지망생들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건넸다. “편집자들에게 중요한 덕목은 에너지, 저자를 열정적으로 좋아하고 그의 빈틈을 메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요. 그런 에너지와 능력을 갖춘 새로운 편집자들이 출판쪽에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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