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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유관순 열사 순국 제100주기 추모제 28일 천안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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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11시 병천면 유관순열사추모각

뉴시스

[천안=뉴시스]이종익 기자 = 충남 천안 유관순열사 추모공원 동상. 2020.05.26. (사진=천안시 제공)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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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오는 28일 오전 11시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열사추모각에서 '유관순 열사 순국 제100주기 추모제'를 연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추모제는 천안시(시장 박상돈)와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회장 류정우) 주관으로 열린다.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돼 옥중에서 순국한 열사의 애국정신을 기억·계승하기 위한 행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참석 인원이 100명 미만으로 축소됐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 독립유공자 유족, 학생, 시민이 참석한다. 추념사와 추모사, 헌화, 분향, 추모의 글 낭독, 유관순 노래 제창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유 열사(1902년 12월16일~1920년 9월28일)는 충남 목천군 이동면(지금의 천안시 병천면) 출생이다. 유 열사는 1919년 4월1일 갈전면(葛田面, 現川面) 아우내(川) 장터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한 대표적 여성 독립운동가다.

1916년 이화학당(梨花學堂)에 교비 장학생으로 입학한 유 열사는 고등과(高等科) 1학년 3학기 때 3·1 독립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3월5일 남대문 독립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열사는 조선총독부의 강제 명령에 따라 이화학당이 휴교되자 독립선언서를 갖고 귀향했다.

유 열사는 인근 교회와 청신학교(靑新學校) 등을 돌아다니면서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고 천안·연기·청주·진천 등지 교회와 학교를 돌아다니며 만세운동을 협의했다. 그는 기독교 전도사인 조인원(趙仁元)·김구응(金球應) 등과 만나 4월1일 아우내 장날을 이용해 독립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4월1일 아침 일찍부터 아우내 장터에는 천원군(옛 천안 지역에 있었던 행정구역) 일대뿐만 아니라 청주와 진천 방면에서도 장꾼과 시위 군중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전 9시 3000여명에 달하는 군중이 모이자 조인원이 긴 장대에 대형 태극기를 만들어 높이 달아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독립만세를 선창했다. 곧이어 아우내 장터는 삽시간에 만세소리로 진동했다. 유 열사는 미리 만들어 온 태극기를 나눠주며 대열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했다.

독립만세운동이 절정에 달하던 중 긴급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해 대열의 선두에 있던 한 사람이 칼에 찔려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다. 열사는 군중과 함께 시신을 둘러메고 헌병 파견소로 몰려갔다. 이들은 시신을 파견소 앞마당에 내려놓고 일제의 만행을 성토했다. 사태가 험악해지자 일본 헌병들은 파견소 안으로 들어가 숨었다. 시위 군중은 조인원의 설득으로 충돌 없이 평온을 되찾았다.

곧이어 헌병 분견대원과 수비대원 30여명이 트럭을 타고 도착해 총검을 휘두르고 무차별 사격을 감행했다. 시위 군중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일본 헌병들은 이들을 끝까지 추격하면서 총을 발포하고 칼로 쓰러뜨렸다. 이 같은 일제의 만행으로 유 열사의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 등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3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유 열사는 좌복부와 머리를 칼에 찔려 숨진 아버지의 시신을 업고 유중무·조인원·김병호·김용이 등 40여명과 함께 파견소로 몰려가 소장을 비롯한 일본 헌병들에게 항의했다.

유 열사는 한꺼번에 부모를 잃고 독립만세운동 주모자로 체포돼 공주검사국(公州檢事局)으로 송치됐다. 그는 공주 영명학교(永明學校) 학생대표로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다 체포된 오빠 유우석(柳愚錫)과 마주쳤다.

유 열사는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이에 불복해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했지만 형이 확정돼 서대문형무소에 감금됐다. 열사는 옥중에서도 어윤희(魚允姬)·박인덕(朴仁德) 등과 계속 독립만세를 외치다 고문으로 18세에 옥중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열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후 유 열사는 광복 이후에도 3·1운동과 항일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주체적 여성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자유·평등·인권정신을 인정받아 지난해 3월1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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