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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한국의 산토리니? 감천 문화 마을? 불량한 주거지역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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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최수연 <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책으로여는세상, 2010)
유동훈 <어떤 동네>(낮은산, 2010)
김중미 <꽃은 많을수록 좋다>(창비, 2016)

오늘은 부산과 인천, 두 곳의 옛 동네에서 공부방을 열고 계신 분들이 쓴 세 권의 책을 소개한다. 최수연 <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은 부산시 감천동에서 30여 년 간 이어지고 있는 우리누리공부방, 김중미 <꽃은 많을수록 좋다>와 유동훈 <어떤 동네>는 인천시 만석동에서 역시 30여 년 간 이어지고 있는 기차길옆작은학교에 대한 이야기다. 기차길옆작은학교는 김중미 선생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워낙 유명해서, 오늘은 주로 부산의 우리누리공부방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려 한다.

부산과 인천의 두 공부방 모두 1988년에 시작되었다. 두 공부방이 같은 해에 스타트한 것은 우연이 아닐 터이다.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은 한국이 오랜 군사정권의 지배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정치적・경제적 선진국이 되어 가던 해였다.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룩한 뒤, 한국 시민은 삶의 질을 높이는데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천성호의 <한국 야학 운동사, 자유를 향한 여정 110년>(학이시습, 2009)에 따르면, 1980년대까지 진보적 사회운동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던 야학이 1990년대 들어 방향전환을 모색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청년 노동자를 주된 대상으로 하던 야학이, 1990년대부터는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해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게 되었다. <야학21> 편집부가 1998년에 조사한 통계자료를 보면, 야학에 출석한 다양한 연령층의 수강생들은 배운 것이 실생활에서 도움이 되고, 저녁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으며,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좋아서 야학을 다닌다고 답하고 있다(13. 1990년대 야학의 일반적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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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감천동 태극도 신앙촌(감천 문화 마을) 전경(2020년). ⓒ김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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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고 있는 부산과 인천의 공부방을 야학과 동일시할 수는 없겠지만, 세 권의 책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부산 감천동과 인천 만석동 두 지역 공부방의 사정은 1990년대 들어 야학이 겪은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글 쓰기를 배우는 어머니들, 일용직 건설 현장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을 이해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려는 아버지들의 모습(<산동네 공부방> <글 모르는 기 죄가?> <공부방 아버지들의 수다>)은 이를 보여준다.

이 세 권의 책에는 공통적으로 이런 대목이 보인다. 공부방을 열고 있는 동네에 대해 이야기하면, "아직도 그렇게 가난한 동네가 한국에 있느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나도 평소에 사람들과 함께 답사를 하면서 종종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한국에서 정책을 입안하는 자리에 있거나, 독서모임을 할 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고층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도심지의 회사나 학교를 오고가는 생활을 한다. 그들이 시장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도 대체로 재건축·재개발이 끝난 고층아파트 단지 밀집 지역이거나 핫 플레이스다. 그 가운데 몇몇 지역들은 전선 지중화도 끝나 있을 터이다.

이런 분들과 함께 대서울과 다른 지역을 다니다 보면 "여기는 전선이 밖에 나와 있네요." "서울에는 아파트가 가장 많은 줄 알았는데, 사실은 빌라가 가장 많은 거였군요." 등의 반응이 나온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일, 살지 않은 장소, 만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정말로 모름을 절감하고는 한다. 하물며 오늘 소개하고 있는 책들의 무대가 되는 공부방과 동네들은 빌라보다도 더 거주 환경이 좋지 않은 식민지 시대의 노동자 사택과 현대 초기의 집단 정착촌이니, "아직도 그렇게 가난한 동네가 한국에 있느냐?"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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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괭이부리마을(2019년). ⓒ김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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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공부방이 자리한 마을의 분위기는 유동훈 "어떤 동네"에 실려 있는 시 <노후 불량 주거지역>에 잘 묘사되어 있다.

<노후 불량 주거지역>

우리 동네를 대한민국 정부는 노후 불량주거지역이라고 한다.
이 노후 불량 주거지역은 일제강점기 공장노동자들의
집단합숙소(일명 아까사끼촌)에서 시작되었다.
바닷가를 끼고 일본군의 잠수함을 건조하고 무기를 만드는
군수공장들이 있었고, 농민들에게서 수탈한 곡물을 군량미로 쌓아 두던 창고들이 있었다.
이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피란민들이 내려와 갯벌을 맨손으로
간척하기도 하고 근처 낮은 산에 토굴을 파서 살기 시작하면서
동네의 꼴을 갖추어 나갔다.

인구가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한 것은 6, 70년대 전라도, 충청도
등지에서 올라온 이농민들이 자리를 잡으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다락방을 올리고 집과 집들이 연결되면서 온 동네가 한 덩어리의 집이 되었다.

이 노후 불량 주거지역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쇠락하기 시작한다.
소비사회 깃발 아래 젊은이들이 떠나면서 동네는 점점 공동화되었다.
아이엠에프를 거치면서 아파트와 공장으로 둘러싸인 이 외딴 섬으로
작고 낮은 불량한 이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세상은 우리 동네를 불량한 사람들이 사는 불량한 동네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 나라 잃은 설움을 몸뚱아리 하나로 감내해야 했던
식민지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은 불량하다.
거적때기 몇 장으로 세상의 폭력을 막아보려 했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삶은 불량하다.
경제발전이라는 허울 아래 목재공장에서 목도질을 하고
밤새 미싱을 돌리며 좁은 판잣집에서 피곤한 몸을 누이던
우리 형 누이들의 삶은 불량하다.
세상에서 내쫓겨 다시 우리 동네로 숨어든 천민의 아이들,
동네에 있는 세 평의 공간이 가장 크고 자유로운 놀이터인
우리 아이들은 참으로 불량하다.
한밤에 조금씩 나무를 주워 만든 집에 수도가 들어왔을 때가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말하는 우리 동네 할머니들의 삶과
그 집에서 나머지 삶을 마치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들의 소망은
참으로 불량하다.
지난 2015년, 인천시 동구청은 기차길옆작은학교가 자리한 괭이부리마을에 속칭 '쪽방촌 체험관'을 만들려다 여론의 비난을 받고 포기한 바 있다. 그러나 결국 만석부두 근처의 옛 북해안선 철길변에 형성되었던 원괭이부리마을은 관광지에 가까운 동네가 되어 카페와 공방이 늘어나고 있다. 기차길옆작은학교가 있는 괭이부리마을도, 이웃한 동일방직 인천공장이 머잖은 시점에 문화공간으로 정비되거나 재개발되어 고층아파트단지가 되면 관광지화(化)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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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괭이부리마을의 명물 화순반점. 나무 간판은 그후 없어졌다. (2014년) ⓒ김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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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우리누리공부방이 자리한 부산시 감천동은 속칭 "감천 문화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관광지화되어 있다. 하지만 이른바 "감천 문화 마을"은 강증산의 증산도를 이은 태극도 신도들이 한국 전쟁 후에 집단 정착한 태극도 신앙촌이다. 여전히 태극도 본부와 교주 조철제의 묘소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지역은 원래 "감천 태극도 마을"이라 불려왔는데, 언제부터인가 언론에서 이 동네의 터줏대감인 "태극도"의 존재를 지우고 "감천 문화 마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산동네를 개척한 태극도 신도들을 지워버리고,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는 가난한 사람들도 지워버리는 "문화"란 도대체 뭘까?

감천동 산동네에서 공부방을 열 곳을 찾아 헤매면서 받은 느낌을 최수연 선생은 아래와 같이 적는다. 조선시대 후기나 현대 북한을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듯이, 산에 나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편견이다. 부산의 감천동, 서울의 북아현동 등의 옛 사진을 보면, 산꼭대기까지 정말 빽빽이 집이 들어차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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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부산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으로 소문난 곳은 지금의 우리누리공부방이 있는 감천동과 연산동, 전포동 그리고 가야동과 청학동, 당감동이었다. 그 가운데 감천동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다른 지역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 온종일 집을 구하느라 산동네 골목을 휘젓고 다니다 보면 어느새 오후가 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 너무 졸리고 피곤해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 앉아 잠시 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참으로 삭막해보였다. '산'동네인데도 정작 사람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작은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건너 마을에 나무가 몇 그루 있는 곳이 있었지만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부잣집의 집안 묘지라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34-36쪽)
2020년 현재도 한국 곳곳에 가난한 동네가 많이 있고 그곳에 사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이 세 권의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될 분들도 많을 터이다. 그래도 좋다. 우리누리공부방의 최수연 선생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책이 지니는 의의에 대해 "산업화의 그늘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렸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국제신문 2012년 4월 25일 <감천동 우리누리공부방 최수연 센터장 - "25년 전 산동네의 '조용한 기적'은 아직 진행중").

원괭이부리마을은 그저 철길변의 이색적인 건물들이 늘어선 곳이 아니고, 감천 태극도 신앙촌은 그저 건물들이 알록달록한 한국의 산토리니가 아님을 아는 것만으로도, 한국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시야는 확 넓어질 터이다. <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과 <꽃은 많을수록 좋다>는 수필, <어떤 동네>는 시집에 가깝다. 세 책 모두 잔잔하니 잘 읽히는, 무엇보다도 책으로서의 미덕을 갖춘 좋은 작품들이니 책 읽는 즐거움도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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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많을수록 좋다>(김중미 지음, 창비), <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최수연 지음, 책으로여는세상), <어떤 동네>(유동훈 지음, 낮은산)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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