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그 많던 욜로족은 다 어디로 갔을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스텔라 장의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


한겨레

공식 누리집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스텔라 장은 최근에 필자가 매우 즐겨 들었던 가수 중 한명이다. 그의 매우 특이한 이력부터 간단하게 살펴본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혼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대학에서는 생명공학을 전공했다. 12년 동안 프랑스에서 살고 25살에 귀국했으니, 유년기를 제외한 시기를 전부 프랑스에서 보낸 셈이다. 원래 래퍼를 꿈꿨던 그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하면서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이 달라졌고, 마침내 우리 앞에 장르도 국적도 모호한, 그래서 더 매력적인 그만의 음악을 선보이며 등장했다.

오늘 칼럼에서 들여다볼 노래는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생각했을 바로 그 깨달음을 제목으로 삼았다.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 음원 사이트에 등록된 그의 곡 설명이 재미있다.

‘제가 직장인이던 시절에 만든 곡입니다. 재미있게 들어주세요! 이제는 월급조차 스치지 않는 저의 통장에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합니다.’

중학교 1학년생이 혼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대학까지 마치고 돌아온 이력도 범상치 않은데, 생명공학이라는 전공을 살려 화장품 회사 록시땅의 계열사에서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단다. 즉, 이 노래는 예술가가 생활인인 양 감정 이입해서 만든 노래가 아니라 실제 인턴사원의 생생한 감정이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말씀. 예전 칼럼에서 소개한 적 있는 재간둥이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나잠수’가 편곡을 맡아준 이 노래의 가사를 보자. 다소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처럼 이 곡에서 월급은 연인으로 의인화되어 있다.

어서 와요. 곧 떠나겠지만 잠시나마 즐거웠어요.

잘 가세요. 하지만 다음엔 좀 오래오래 머물다 가요.

난 매일 손꼽아 기다려. 한달에 한번 그댈 보는 날.

가난한 내 마음을 가득히 채워줘. 눈 깜짝하면 사라지지만.

(중략)

가지 마요. 난 그대 없으면 말 그대로 거지란 말예요.

(중략)

언제쯤에야 자유로울 수 있나? 무한한 이 속박으로부터.

한겨레

2017년 발매한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이 수록된 음반.


몇년 전만 해도 이런 말이 대유행이었다. 욜로(YOLO)! 너는 오직 한번뿐인 인생을 산다는 영어 단어 첫 글자를 딴 이 말은, 한번뿐인 인생인데 통장을 스쳐 가는 월급의 노예로 살지 말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라는 슬로건이 돼주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이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다양한 직업인으로 변신했다. 식당과 카페 등 자영업, 여행가이드, 작가 등등 내가 아는 후배 중에서도 여럿 있다. 그런 경험을 담은 책도 참 많이 출간됐고, 에스엔에스에는 퇴사 후 반짝이는 삶을 인증하는 글과 사진이 넘쳐났다. 지금은? 다 사라졌다. 대신 자영업의 위기, 정부지원금이 아니면 연명할 수 없는 프리랜서들의 처지가 매일 언론에서 다뤄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파는 골고루 퍼지는 방식이 아니었다. 자산 양극화는 오히려 더 심해지고, 이른바 월급쟁이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체감하는 현실도 차원이 다르다. 회사가 망하지만 않으면, 줄어들긴 해도 스쳐 가긴 해도 월급은 나온다. 그러나 문 닫은 카페나 피시방에서는 한푼도 돈을 벌 수 없다. 해외여행이 사라진 시대에 여행가이드 역시 마찬가지. 이들에게 지원금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돈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인간은 한치 앞을 모른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공유경제라는 화두가 우리의 미래상처럼 느껴졌다. 노동시장에서도 그랬다. 필요에 따라 임시로 계약을 맺고 여러가지 플랫폼에서 일을 하는 긱(Gig) 노동자라는 신개념은 앞서 말한 욜로 슬로건과 딱 맞아떨어졌다. 언제 어디서든, 심지어 세계를 누비며, 다양한 환경에서 일하는 긱 노동자의 모습은 스쳐 지나가는 월급을 받겠다며 회사에 묶여 있는 월급쟁이들을 자극했다. ‘그래. 한번 사는 인생 자유롭게 내 멋대로 살아봐야지!’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직전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회사를 그만두고 카페를 차리고, 프리랜서 강사로 변신하고, 배낭을 챙겨 메고 외국으로 떠나 여행업에 투신한 사람들은 미래의 재앙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난을 감수해야만 하는 걸까? 처음부터 회사생활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들에게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라는 식의 논리는 정당한가?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런 비정함은 결국 우리 사회 전체를 불행하게 만든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세계경제위기가 몰고 온 공무원, 전문직 열풍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팍팍하게 바꿔놓았는지 기성세대는 이미 똑똑히 지켜봤다.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는 비교할 수 없을 클 것이다. 전문직이나 공무원은 고사하고, 스치기만 해도 좋으니 월급을 주는 회사에 들어가겠다는 심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강해질 수 있다. 그런 공포는 결국 우리 사회를 위축시키고, 낭만과 상상력을 한가한 잠꼬대로 만들어버리고, 행복하지도 생산적이지도 않은 경쟁으로 미래세대를 몰아넣는다.

한겨레

스텔라 장의 노래로 시작해 이런 거대담론으로 끝을 맺을 줄이야! 필자는 계획하였으나 독자님들은 예상하지 못했겠지. 어쨌든 한가위 연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언택트, 비 해피!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시사특공대> 진행자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채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