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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분열된 자본주의…우리는 도덕성 마저 돈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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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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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승전가가 울려 퍼진 지 30여 년 흘렀다.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자본주의는 홀로 남은 사회경제 체제가 됐다.

하지만 역사에서 승리 이후의 분열은 운명이다. 기독교는 동방정교회와 아리우스주의로 대립했고, 이슬람교도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라졌다. 공산주의조차 소련 주도형과 중국 주도형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자본주의도 내부 분화가 시작됐다.

중국과 미국이 대표하는 두 유형의 자본주의는 각각 패권을 위해 경쟁하고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포르투갈부터 한국까지 세계 각국으로 '이식'되어 놀라운 경제성장을 가져왔다. 반면 중국식 자본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주의의 조합이 결여되어 있고, 중국 특유의 상황에 대응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확산에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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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설명할 수 있는 국가자본주의는 막스 베버가 100년 전 창안한 말이다. 베트남, 알제리, 싱가포르, 그리고 러시아와 모든 중앙아시아 국가도 국가자본주의적 요소가 강하다. 국가자본주의는 특히 정치 엘리트들이 매력을 느낀다. 그들에게 상당한 재량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반면 자유자본주의는 많은 평범한 사람에게 매력적이다. 높은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고, 민주주의와 법치가 혁신을 촉진하고 계층 이동을 허용한다.

둘로 갈라진 자본주의.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등을 쓴 불평등 연구의 세계적 석학 브랑코 밀라노비치 뉴욕시립대 객원 석좌교수가 진단한 오늘이다. 그가 자본주의의 미래에 관한 진단서를 내놓았다. 파이낸셜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에서 2019년 올해의 책으로도 선정된 책이다.

저자는 전 세계가 두 유형의 자본주의로 뒤덮인 가운데, 한편에서는 만화 '아스테릭스'에 나오는 갈릭 마을과 같은 작은 지역이 자본주의라는 생산 방식의 전 세계적 지배에 저항한다고 진단한다. 그중 하나가 북한이다. 북한은 분류하기 어려운 체제로 사실상 왕조 체제다. 이 국가에는 두 갈림길이 있다. 국가자본주의를 선택한다면 중국과 유사해질 것이고, 자유자본주의를 선택한다면 한국과 비슷해질 것이다.

그의 눈에 세계는 산업혁명 이후 처음으로 북미, 유럽, 아시아 세 대륙의 소득수준이 비슷해졌다. 장구한 세계사를 돌아볼 때 자본주의 체제의 유일 지배와 아시아의 경제적 르네상스는 괄목할 만한 장면인데, 이 둘은 서로 관련이 있다. 권위주의적인 아시아 국가조차 자본주의의 장점을 흡수하며 성장의 풍차를 돌려온 것이다. 본질적으로 자립적이고 상품·자본·노동력의 국제 이동이 미미한 공산주의 사회는 팽창적 경향이 강한 자본주의와 달리 세계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었다.

책의 대부분을 할애해 둘로 갈라진 자본주의의 역사를 돌아보는 이 책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후반부에 실린 글로벌 자본주의의 미래다. 초상업화된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부도덕해진다. 오늘날 많은 자본주의 국가는 민주주의와 법치 체제가 스스로 영속하는 상류층을 창출하고, 엘리트와 여타 사람들을 갈라놓는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쪽으로 작동하고 있다. 때때로 미국에서 부는 죄를 세탁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이른바 도덕성의 아웃소싱이다. 불평등은 자본주의의 생존을 위협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핵가족화와 상업화가 강화된다. 핵가족화는 가족이 주는 경제적 장점이 사라지게 만든다. 가정에서 생산되고 사용했던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시장에서 사거나 빌려야 한다. 요리, 청소, 정원 가꾸기, 아기와 노인을 돌보는 일은 전통 사회에서 무료로 제공되곤 했다. 오늘날은 이 모든 서비스를 외부에서 구입할 수 있고 타인과 함께 생활할 필요성이 줄고 있다.

일상의 상업화는 일시적 직업을 전전하는 노동 시장을 만든다. 외부 세계의 침투는 가족의 결속력을 느슨하게 하고 공허하게 만든다. 문제는 상품화와 유연화가 인간관계와 신뢰를 해친다는 것. 이 둘은 시장경제가 원활하게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서로의 서비스에 점수를 매기는 초상업화 시대에 선하고 신사적인 행동의 유인도 줄어든다. 자본주의의 성공이 궁극적으로 인간 본성을 변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고통과 즐거움 속에서도 이득과 손실을 따지는 계산기가 됐다. 자본주의의 진화는 결국 희생, 환대, 우정, 유대와 같은 전통적 가치관을 이기심으로 대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기술 진보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도 만연해진다. 산업혁명 초기부터 인간은 반복 노동을 기계로 대체해왔다. 로봇은 과거의 기계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인간화된 로봇에 현대인은 공포심을 느낀다. 정작 두려워할 것은 로봇을 소유할 기업들이 가져갈 막대한 이익과 불평등의 가속화다. 로봇이 노동을 대체하더라도 새로운 일자리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스마트폰이야말로 일자리를 잡아먹은 괴물이었다. 하지만 이 작은 기계는 우버에서 티켓을 팔거나 개 조련사를 온라인에서 찾아주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직업을 새롭게 만들어줬다.

비관론에서 그치지 않고 저자는 소생 가능성도 타진한다. 그는 자유자본주의가 진화해 대중적 자본주의에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선 정치가 중요하다. 이를테면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조세 정책을 조정하는 일, 공립학교를 질적으로 향상하는 결정, 시민권 향상 같은 사안은 정치적 영역의 판단이다. 정치와 자본 간 관계 설정에 따라 자본주의 진화 단계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집단이 자본과 정치 권력을 과밀하게 독점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권력 독점에 견제 장치를 마련하고 그 필요성을 공유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이 길이 바로 '홀로 선' 자본주의가 걸어가야 할 미래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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