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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너를 통제하고 싶어" 이 욕망도 조상이 물려준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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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인간의 역사는 대체로 진보해왔다. 정치, 건축, 과학, 의학, 인문학은 과거의 것을 딛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유독 전진을 확인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으니,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남녀는 온·오프라인에 넘쳐나고, 자살 충동을 느끼는 이도 줄지 않는다. '인간의 내밀한 역사'는 현대인 내면의 문제를 풀기 위한 실마리를 역사 속에서 찾아보자는 취지로 집필된 책이다.

저자 시어도어 젤딘(87)은 "나는 언제나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인류의 과거 경험에 비추어 살펴보면서 탈출구를 찾으려 했다"고 강조한다. 이어 "만약 그 사람이 자신의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고 전 인류의 경험을 이용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늘 자문했다"고 덧붙인다.

인간이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비단 석유나 문화유산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넘어지고 실패했던 경험 그 자체라는 의미다. 저자는 2020년 한국에서도 사회 균열의 뿌리가 되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어디에서 왔는지 역사를 통해 밝힌다. 바로 위정자들이 사람의 증오를 정치·경제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도화해왔기 때문이란 것이다.

"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장 오래되고도 번성한 인류의 산업이며, 그 산업의 원료는 상처 입은 자존심이나 분노다. (중략) '가장 위대한 국가 지도자의 기술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관심을 쪼개지 않고 하나의 적에 집중시키는 데 있다'고 히틀러는 썼다."

이성을 억압함으로써 성적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도 저자는 역사에서 찾는다. 여기엔 쾌락에 대한 사고의 폭을 확장하지 못하도록 한 사회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전족 풍습은 순결을 향한 집착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전족을 한 여성은 일도 할 수 없고 멀리 걸어갈 수도 없었다. 그것은 남편이 아내를 한가로이 집에만 있게 할 정도로 경제적 능력이 있다는 증거였다. (중략) 전족은 성교 자체의 쾌락에 못지않은 쾌락으로 애호되었으며 남성들은 그런 희생에 연민과 희열을 동시에 느꼈다."

우울증, 권력, 공포를 비롯한 '마음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던 그는 독자가 스스로를 좀 더 긴 시간과 넓은 공간의 맥락 안에서 바라보길 조언한다. "(과학은) 모든 발견은 그다음 발견을 위한 초대장이라는 것, 그리고 실패한 실험은 해답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질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 역사 속 개인의 인생에 주목해온 저자는 옥스퍼드 성 안토니 칼리지 학장을 지냈으며, 영국 '인디펜던트'에서 선정한 '다음 세기에도 지속될 사상을 가진 40인' 가운데 한 명으로 뽑히기도 했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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