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2 (수)

`광기의 황제` 네로, 그에게도 변명거리는 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고대 로마제국 네로 황제는 폭군의 대명사다. 어머니와 동침한 뒤 살해했고, 두 아내가 그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한 명은 복중에 태아를 품고 있었다. 과대망상증으로 스스로를 '새로운 아폴로 신'으로 여겼다. 유일신을 숭배하는 그리스도교신자를 콜로세움에서 사자 먹이로 던져 주기도 했다. 그는 악마였으며, 적(敵)그리스도였다. 직접 행한 로마 대화재는 광기의 절정이었다.

신간 '고전에 맞서며'는 역사의 회칠을 한꺼풀 벗기면서, 네로의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선다. 콜로세움에서 기독교인을 고문했다는 것부터 사실이 아니다. 콜로세움은 네로 황제 이후에 건설됐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미지와는 달리 사후 그는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네로 사후 100년 뒤 현 터키 서부지역에 그를 기리는 대형 조각상이 세워졌다. 네로의 얼굴이 들어간 거울은 당대 최고 인기 제품이었다. 고대 유대인은 네로가 2세기 위대한 랍비 '메이어'의 선조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이 책은 머릿속에 똬리를 튼 역사의 선입견을 해체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역사의 기록서를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우리의 승자 편향 역사관에 의문을 제기한다. 기록의 양극화에도 반기를 든다. 폭군에 대한 악마화를 경계하는 만큼이나, 성군에 대한 성역화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알렉산더'로 유명한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 예다. 그의 정벌 전쟁으로 그리스의 조그만 도시 마케도니아는 세계적 제국이 됐다. 즉위한 해인 기원전 334년부터 10년 사이에 5000㎞ 떨어진 인도 펀자브 지방까지 정벌했다. 당대 최강대국인 페르시아와 일전도 유명하다.

그러나 이 책은 알렉산드로스의 폭정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고대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기록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티레와 가자 지역을 포위 공격한 뒤에 성인 남성 전체를 학살했다. 인도 펀자브에서도 그는 짐승을 도살하듯 민간인을 죽였다. 폭군 네로 황제만큼이나 추악한 이면의 기록이다. 우리는 취사선택된 역사의 이면에 너무 무관심해왔는지 모른다.

우리네 반만년 역사에 각인된 광인들의 목소리는 언제쯤 울려퍼질 수 있을까. 쓰인 역사만큼이나 미처 쓰이지 못한 역사도 중요하다.

[강영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