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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무림사건 피해자 김명인·박용훈, 40년 만에 완전한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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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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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사건 관련 40년 만에 무죄 선고받고 서울중앙지법을 나오는 김명인 인하대 교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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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사건’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한 피해자 김명인 인하대 교수와 박용훈씨가 두번째 재심을 통해 사건 40년 만에 온전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이관용 부장판사)는 25일 1981년 계엄법·반공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김 교수와 박씨의 두번째 재심에서 반공법 위반(불온서적 소지)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김 교수와 박씨는 앞서 2000년 재심에서 계엄법 위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유죄가 유지됐다. 이번 판결로 두 사람은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가 인정됐다.

두 사람은 이른바 ‘무림사건’의 피해자들이다. 김 교수는 서울대 국문과 학생이었던 1980년 12월 11일 12·12 쿠데타 1주년을 하루 앞두고 벌어진 교내 집회에서 “광주항쟁(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해 군부독재를 타도하자”는 내용을 담은 ‘반파쇼학우투쟁선언문’을 만들어 배포했다가 체포됐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학생이었던 박씨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제적됐다가 1980년 3월에 복학한 상황에서 같은 혐의로 체포됐다. 두 사람은 한 달여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구금된 상태에서 고문기술자로 이름 높았던 경찰관 이근안에게 구타, 물고문, 잠 재우지 않기 등의 고문을 당한 끝에 허위 자백을 했고 이듬해 1월 계엄법과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기소됐다. 김 교수는 징역 3년·자격정지 3년, 박씨는 징역 1년 6월·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경찰은 이 사건을 서울대 지하 학생운동 조직인 ‘무림(霧林)’이 일으킨 용공사건이라 하여 무림사건이라고 발표했다. 영화 <변호인>에서 다뤄진 부림사건의 전초격인 사건이다. 림(林)은 조직사건을 일컫는 경찰 은어로, 학림사건, 부림사건 등 경찰이 발표한 주요 용공조직사건에는 림으로 끝나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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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6월4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무림사건의 발단이 된 1980년 12월 11일 시위를 비롯해 학내 시위를 좌경화된 학생들이 주도했다고 발표하는 당시 문교부 장관의 국회 보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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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이들은 1998년 재심을 청구해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무죄 판결을 받아냈지만, 반공법 위반 혐의는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계엄법 위반 부분에 대해서는 1999년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무죄로 인정됐지만,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 없이 이들의 책을 수거해 불온서적이라고 기소한 부분에 대해서는 유죄로 남은 것이다.

김 교수와 박씨는 2018년 다시 재심을 청구해 근 40년 만에 완전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형사소송법상 재심 개시 결정은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경찰이 불법체포나 불법감금, 폭행, 가혹행위 등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증명된 경우 등에 한해 이뤄질 수 있다. 검찰은 재재심에서도 김 교수에게는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박씨에게는 징역 8월 자격정지 1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여러 증거를 비춰보면 피고인들이 수사기관에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며 “피고인들이 원심에서 죄를 인정하는 듯한 진술도 했는데, 당시 피고인들은 불법 구금 상태에서 자백이 강요된 것으로 의심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내용들은 피고인들이 당시 선후배와 함께 역사·경제·사회 그리고 사회주의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고 대화한 사실 등을 인정한 것이지, 당시 독재정권과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넘어 소위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을 갖고 있었다고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재판부는 판결 선고를 마친 후 “피고인들은 당시에도 그렇고 이후 사회적, 개인적으로도 많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며 “이를 풀어내는 과정에서도 힘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에 대해 깊은 동의를, 마음으로부터 응원을 보낸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법정을 나선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이 있는데 지연됐더라도 이렇게 되니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 사람들이 민주적 신념과 권리에 따른 행동을 한 것으로 피해를 보는 일이 다시는 있어서 안 된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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