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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만행’ 기정사실화로 ‘국제 여론 더 나빠질까’ 우려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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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사과 통지문’ 배경

[경향신문]

준칙 따라 사격 ‘정당방위’ 주장
향후 북·미 대화 의식한 조치

북한 통일전선부가 25일 청와대에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하라고 했다”는 내용의 통지문을 보낸 것은 남북관계 역사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인용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는 점에서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미안하다”는 발언을 담은 문서를 남측에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북한은 통지문에서 전날 합동참모본부의 발표를 반박했다. 실제로 북한은 통지문에서 ‘불법 침입자’가 신분 확인 요청에 응하지 않고 도주하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단속정장의 결심으로 해상경계근무 규정이 승인한 행동준칙에 따라’ 사격을 했고, 사격 후 시신이 사라진 부유물만을 소각했다고 주장했다. ‘비무장 민간인임을 확인하고도 상부의 명령에 따라 살해하고 시신을 소각 처리했다는 국방부 발표의 핵심 내용을 모두 부인하고 총격 살해도 사실상 복무 수칙에 따른 정당한 군사적 조치임을 주장한 것이다.

특히 북한은 “귀측 군부가 무슨 증거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불법 침입자 단속과 단속 과정 해명에 대한 요구도 없이 일방적인 억측으로 ‘만행’ ‘응분의 대가’ 등과 같은 불경스럽고 대결적 색채가 깊은 표현들을 골라 쓰는지 커다란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항의했다.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은 미안하지만 사실관계는 남측의 발표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귀측의 정확한 이해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이 같은 내용의 통지문을 보낸 것은 이번 사건의 파장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남측의 사건 개요 발표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자신들이 전대미문의 엽기적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국제사회에 각인되고 비난 여론이 커져 북한이 국제적으로 고립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으로 북한의 호전성이 부각되고 미국 내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면서 향후 북·미 대화에 어려움을 겪을 것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해석도 있다. 또한 코로나19 방역과 수해복구 등 국내 문제 극복에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남북관계를 최악의 적대상황으로 만드는 것이 유리하지 않다는 인식도 깔려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사건의 핵심적 부분에서 국방부의 발표와 북한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진상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정부가 북측에 이번 사건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공동조사를 제안하고 북한이 이에 응하면서 대화가 시작된다면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정보자산을 노출해야 하는 등의 부담이 있는 데다 북한이 조사에 응할지도 불투명해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자칫 이번 사건은 정확한 진상을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조사를 계기로 남북접촉이 시작된다 해도 현재 정세가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만한 동력이 없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북한은 파격적인 사과 통지문을 통해 이번 사건의 파장이 확대되는 것을 막고 남북관계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는 의도는 분명히 보였지만 이것으로 남북관계의 전기가 마련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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