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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기자가만난세상] 요양병원도 ‘언택트 시대’ 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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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잘 계신대? 요양병원서 얘기 안 해줘?”

“창문 너머로 면회할 수 있대서 추석 지나면 이모랑 가보려고 하는데….”

엄마는 말끝을 흐렸다. 기대보다 걱정과 불안이 더 짙어 보였다.

외할머니는 치매가 심해져 3년 전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1년 반 전, 딱 한 번 병문안을 갔다. 할머니는 가장 최근의 일부터 차례로 기억을 지워가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잊고 “내가 여기에 있는데 한 번도 와보지 않는다”고 원망했다.

지난해 말부터는 5남매 중 아들 셋 얼굴을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딸 둘 얼굴은 또렷이 기억했다.

세계일보

김희원 경제부 기자


엄마는 1월 설 연휴 전 할머니에게 다녀왔다. 그 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했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면회를 가지 못했다. 제한적으로 면회가 허용됐던 7월에도 가지 않았다.

“벌써 6개월이 더 지났잖아. 이제는 나도 못 알아볼까 봐….”

할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과 자신을 잊어버린 모습을 확인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복잡하게 얽힌 것 같았다. 속상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코로나19로 요양병원·중환자실 등 고위험시설 면회가 어려워지면서 생이별한 가족들이 줄줄이 생겨났다.

면회는 3월부터 전면 금지됐다가 7월부턴 사전예약을 받아 비접촉으로 실시됐다. 그러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8월 중순부터 다시 중단됐다. 정부는 이동이 많은 이번 추석 연휴에도 요양시설 면회를 금지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만큼 추석 이후 큰 문제가 없다면 제한적 면회는 가능할 거로 보인다.

부모님을 병원에 모신 것도 죄송한데, 오랫동안 찾아가지도 못한 보호자들은 속이 타들어 간다. 그렇지만 더 큰 위험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보니 병원이나 정부를 원망할 수도 없다. 이 사태가 종식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한 방송사가 최근 몇 개월 사이의 요양병원 실태를 보도했다. 약물을 과다 처방해 노인들을 억지로 재우고 함부로 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보호자들 우려는 더욱 커졌다. ‘요양병원 관리를 철저히 해 달라’는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대한요양병원협회는 “교묘한 편집을 통한 왜곡”이라며 “코로나19 감염 예방의 마지막 보루라는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만행은 정말 일부일지 모른다. 대다수 의료진과 요양보호사들은 직업윤리를 철저히 지키며 우리 어르신들을 돌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호자들을 안심시키지 못한 책임까지 부정할 수 없다. 영상통화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소통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요양병원도 있지만 복불복이다. 대부분은 눈으로 부모님의 건강상태나 기분을 확인할 수 없으니 불안한 마음이 크다.

감염병 차단에 힘을 쏟느라 신경 쓰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환자와 보호자를 배려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면회 시스템과 환자 정보 알림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 미래에 또 어떤 감염병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필요한 조치다. 요양병원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김희원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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