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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향기 [詩의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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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의섭

꽃밭을 뒤덮은 건 시포 같은 향의 기운이었다

가벼워서 끝끝내 짓누르는 중압

충매를 치르기 위해 꽃은 몸의 입자를 쏟아낸다

그러니까 꽃향기는 정확히 생과 사의 한가운데를 흐른다

비장해 보이거나 죽음의 냄새가 배어 있는

향그러움 슬픔의 독 한계절의 국부마취

달빛은 꽃향기를 통과하다 아련해지고

바람은 물들어 바람이라 불리지 않는다

조만간 산책이 애도로 바뀌는 지점에 다다를 것이다

향기의 성층권이 낮아지면 꽃들은 별의 최후를 닮아간다

파편 되어 흔적 없이 바스러지는

종말이 다가올수록 향기의 자장은 꽃을 중심으로 좁혀진다

꽃이 지면 향기가 걷히는지 향기가 사라지면 꽃이 지는지

꽃밭을 둘러싼 건 생무덤이었다

●윤의섭 시인 약력

△1994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 시집 ‘묵시록’, ‘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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