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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아무튼, 주말] 코로나 인포데믹… 멀쩡한 냉면집 사장은 왜 코로나로 죽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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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정보 유행병, 인포데믹

지난 9월 초 경기도 하남시의 한 냉면집에 지나가던 사람이 들어와 불만이 묻어나는 말투로 따졌다.

“이 가게 사장이 코로나 확진자라면서 이렇게 버젓이 장사를 해도 되는 겁니까?”

며칠 후에는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와 걱정스레 물었다. “사장님이 코로나에 걸려서 돌아가셨다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냉면집 사장인 전모씨는 죽지 않았고, 코로나에 걸린 적도 없다. 심지어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거나 의심 증상이 나타난 적이 없어서 확진 검사를 받아본 적도 없다. 여느 때처럼 가게를 운영하던 그는 어쩌다 코로나 사망자가 됐을까.

조선일보

9월 초 하남시에 코로나 관련 허위정보가 퍼지자 하남시가 내놓은 경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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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시대, 바이러스만 사람을 위협하는 게 아니다. 불안하고 우울한 심리를 파고든 거짓 정보도 바이러스처럼 퍼질 수 있다. 일명 ‘인포데믹(infodemic)’이다. 인포데믹이란 ‘정보’(information)와 ‘유행병’(epidemic)의 합성어로 ‘거짓정보 유행병’을 뜻한다.

전 씨가 코로나 사망자가 된 경위는 확실치 않다. 지난 8월쯤 하남시의 한 공중목욕탕에 확진자가 다녀갔고, 전 씨 가게의 한 직원은 그와 목욕탕에서 같은 시간대에 머물렀다. 직원은 자가 격리를 하면서 검사를 받았으나 음성 판정이 나왔다. 소문은 목욕탕에서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게 직원이 아니라 사장으로, 음성 대신 양성으로 바뀐 것이다. 목욕탕의 확진자가 죽었다는 헛소문까지 퍼지면서 모든 거짓 정보가 하나로 모여 “냉면집 사장이 코로나에 걸려 사망했다”로 둔갑했다. 이 가짜 뉴스는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카페를 타고 다니면서 빠르게 퍼졌다. 맘카페에 올라온 글을 보고 한 여성이 하남시에 문의를 하면서 시 당국과 전 씨가 소문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됐다. 시는 지난 2일 시 홈페이지와 SNS 등에 허위 사실 유포 자제를 당부하는 호소문을 게시했다. 전 씨는 “그런 소문이 돌았을 때 당연히 손님이 줄었고, 물어보거나 항의하는 사람이 많아서 가게를 사흘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 동네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했기 때문에 굳이 최초 유포자를 찾아서 처벌을 할 마음은 없다”고 했다.

디지털 시대에 인포데믹의 힘은 강해서 어떤 거짓 정보는 세계적으로 퍼지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단 가짜 뉴스가 계속 제기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이를 언급하자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더 늘어났다. 트위터는 지난 2월 이런 코로나 음모설을 올린 금융·시장 전문 블로거 ‘제로 헤지’의 트위터 계정을 영구 폐쇄했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의 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홍콩 바이러스 학자 옌리멍의 인터뷰 영상에 페이스북은 ‘가짜 뉴스’ 경고 문구를 삽입했다.

조선일보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의 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홍콩 바이러스 학자 옌리멍의 인터뷰 영상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가짜 뉴스’ 경고 문구를 삽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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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데믹은 코로나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소셜미디어와 온라인에 거짓 정보와 가짜 뉴스가 터져 나왔을 때부터 꾸준히 제기된 문제이다. 다만 코로나 때문에 불안과 우울 지수가 올라가고 사회·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인포데믹이 더 빠르고 강력하게 퍼진 것이다. 확진자가 다녀간 식당, 카페의 허위 명단이 메신저와 온라인 카페에 돌아다녔고, 지난 3월에는 ‘[긴급 속보] 연세대학교 약학대학 학장 한균희 교수님의 전언’처럼 그럴듯해 보이는 거짓 연구 결과도 메신저에서 퍼졌다. 김지용 정신과 전문의는 “불안과 관련된 뇌 부위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판단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별개이다. 불안한 시기엔 전자 부위인 변연계 쪽에 더 힘이 쏠리고 후자인 전두엽쪽과의 균형이 깨져서 합리적인 판단을 못 내리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미래가 불투명하고 화가 난 상태이다 보니 듣고 싶은 정보, 유혹적인 정보에 더 쏠리는 것 같다”라고 했다.

인포데믹에 대응할 만한 법안이 현재로선 따로 없으며 지금까진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처벌했다. 대구지법은 지난 6월 ‘특정 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응급실에서 검사를 받았고 곧 폐쇄될 예정’이라는 허위 사실을 소셜미디어에 퍼뜨린 30대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생활 정보를 공유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특정 식당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허위의 게시물을 올렸다가 서울중앙지법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처벌 수위가 높지 않고 그 대상도 모호하기 때문에 이번 코로나 인포데믹을 겪으면서 가짜 뉴스 처벌을 위한 법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독일은 소셜네트워크 법안을 제정해 소셜미디어에 가짜 뉴스 등 위법적 게시물이 올라왔을 경우 플랫폼 사업자가 24시간 이내에 삭제하지 않으면 최대 700억원에 달하는 과태료를 부과한다. 지난 13일 국회에서 발의된 일명 ‘코로나 가짜 뉴스 이익 몰수법’은 국가 방역 활동에 대해 고의로 허위 사실을 유포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또 가짜 뉴스 유포를 통해 발생한 수익을 ‘범죄 수익’으로 규정, 몰수가 가능하다.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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