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3 (월)

[아무튼, 주말] "연예인 NO, 내 셀카 사진처럼 성형수술 해주세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냅챗 이형증’을 아십니까

‘보정된 셀카 사진과 같은 얼굴을 갖기 위해서 성형수술을 원한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건 외과가 아닌 정신과 의사다.’

2018년 11월 미국의학협회 학술지(JAMA) 안면 성형수술 분과에 실린 논문의 경고다. 이 논문은 “필터링된 이미지는 현실과 환상 간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고 자신의 신체적 특징을 제거해야 할 결함으로 집착하게 하는 정신질환(신체 이형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성형 어플’이라 불리는 ‘easy snap’ 앱의 첫 화면. 40세의 얼굴이 24세처럼 젊어 보이게 된다고 홍보한다. /easy snap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앞서 영국 성형외과 의사 티지언 이쇼는 이를 ‘스냅챗 이형증(snapchat dysmorphia)’이라고 명명했다. 스냅챗은 이용자의 사진을 다양하게 꾸밀 수 있는 필터로 유명한 메신저 서비스. 이 필터를 사용하면 피부를 매끄럽게 하고, 얼굴은 작고 갸름하게 만들며, 눈은 더 크게 보이는 등 이용자의 외모를 바꿀 수 있다.

‘스냅챗 이형증’은 필터로 보정된 이미지에 익숙해지면서, 셀카 속 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의 괴리에 불만족을 느끼며 집착하는 증상을 말한다. 이쇼는 “예전에는 환자들이 자신이 닮고 싶은 유명인이나 모델 사진을 가지고 성형외과에 왔다면, 최근에는 점점 많은 환자가 필터링된 자신의 사진을 가지고 온다”고 했다.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최근 국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국내 일부 성형외과는 ‘성형수술로 셀카 사진 속 내 얼굴이 가능하다’고 광고하기도 한다.

성형외과 전문의인 윤성호 파라디아 성형외과 원장은 “보정 앱으로 찍은 자신의 셀카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런 식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뿐 아니라, 이렇게 찍은 셀카 사진을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 생각하고 수술 후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자도 많다”고 했다.

얼마 전 이 성형외과에는 졸린 듯 눈을 크게 뜨기 어려운 안검하수 증상에 지방이 많아 눈꺼풀이 눈동자를 거의 반쯤 덮은 환자가 찾아왔다. 이 환자는 쌍꺼풀 수술을 받고서, 자신의 과거 사진과 수술 결과를 비교하며 수술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이 환자가 제시한 자신의 수술 전 사진은 보정된 셀카 사진. 눈의 가로세로 크기는 물론 검은 동자(瞳子)까지 거의 두 배로 키운 사진이었다. 수술을 진행한 윤 원장뿐 아니라 상담실장조차 이 셀카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윤 원장은 “실제 자신의 눈과 너무나 다르게 보정한 자신의 셀카를 진짜 자신의 눈이라 착각해 수술 후 진심으로 우울해하는 모습은 거의 충격적이었다”며 “이 경우 수술 전 찍은 의료용 사진을 보여 드리고 수술 후와 비교를 해 드리면 10명 중 8명은 수긍하지만, 10명 중 2명은 자신의 원래 얼굴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휴대전화 속 보정 사진만이 자신의 얼굴이라고 생각해서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터치 한 번에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가 되는 ‘보정 앱’과 달리 성형수술은 부기와 멍 등이 발생하며, 실제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앱에 익숙해지면서 수술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윤 원장은 “셀카 사진은 말 그대로 평면 위의 그림 같은 2D 이미지로서 눈의 크기, 얼굴형, 콧대 등을 그림 그리듯 변형할 수 있지만, 성형 수술은 개개인의 뼈의 형태, 신경의 위치 등에 따라 크기 조절에 한계가 있다"며 “과도한 수술을 원하는 환자들에게는 정밀 CT 촬영을 통해 수술의 한계를 설명하지만, 실력이 없어서 못한다는 식의 반응을 하는 분도 있다”고 했다.

성형외과 전문의인 아이라인성형외과 임재호 원장도 “간혹 비현실적 크기나 모양을 원하는 환자들도 있는데, 이런 비현실적 시술은 또 다른 비현실적인 요구로 이어지고 결국 수술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경우를 직면하게 된다”며 “이런 경우는 환자에게 현실감을 심어주고 환상에서 벗어나게끔 도와야 한다”고 했다.

이런 고충은 성형외과뿐 아니라 사진관에서도 겪고 있다. 특히 얼굴이 강조되는 증명사진의 경우가 심하다. A 사진작가는 “최근에는 보정 앱을 통해 찍은 셀카가 자신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미의 기준을 셀카 사진에 두고, 증명사진이 무조건 그 사진보다 잘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며 과도한 사진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했다.

[남정미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