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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법률판] '아빠' 가산점 받고 유치원교사된 딸, 12년 뒤 임용 취소…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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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정영희 법률N미디어 에디터]
머니투데이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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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국가유공자 자격으로 가산점을 받아 임용 시험에 합격했다면 추후 아버지의 국가유공자 자격이 취소됐을 때 임용 합격 또한 취소돼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전직 유치원 교사 A씨는 2007년 공립 유치원 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했지만 12년 만인 지난해 8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임용 취소를 통보받았습니다. 월남전 참전으로 국가유공자 등록이 되어 있었던 A씨의 아버지가 실제로는 참전 사실이 없다는 것이 밝혀져 유공자 자격이 취소됐기 때문입니다.

A씨는 이에 불복, 서울특별시 교육감을 상대로 교원 임용 합격 취소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행정법원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A씨 측은 “자신의 과실이나 고의가 없는데도 임용까지 취소되는 것은 부당하다"며 "사태의 책임은 국가유공자 심사를 소홀히 한 보훈 당국에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런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가산점을 빼고 계산한 A씨의 시험 성적은 합격권이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했습니다. 재판부는 “뒤늦게나마 취업 지원 혜택의 오류를 바로잡아 경쟁시험의 공정성을 회복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가산점없인 합격할 수 없었다면 임용취소 정당"

국가유공자 대상과 기준, 혜택은 모두 국가유공자법에 명시돼 있습니다. A씨 아버지처럼 과거 참전기록이 있다면 국가보훈처 판단 하에 국가유공자로 등록됩니다. 그리고 국가유공자 자녀들은 법에 명시된 취업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국가유공자 자녀는 초중등 교사나 공립유치원 교사 임용시험에서 일부 가산점이 부여됩니다. 매 과목별 만점의 40% 이상 득점한 자에 한해 각 과목별 득점에 각 과목별 만점의 10% 또는 5%를 가산합니다. 최종 합격 때도 동점자가 있을 경우에는 국가유공자 가산점을 받은 지원자가 우선으로 선발됩니다.

물론 12년간 유치원 교사로 일해온 A씨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일로 한순간에 직장을 잃었으니 억울한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이에 A씨는 임용취소 처분이 자기 책임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기 책임의 원칙이란 개인은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는 민법의 기본 전제입니다. 본인의 과실이 있었던 것은 아니니 교사직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A씨 입장인데요.

그러나 인사혁신처는 A씨와 비슷한 선례에서 동일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지난해 국가유공자 아버지로 인해 가산점을 받고 경찰이 된 B씨 역시 인사혁신처에 임용 취소를 취소해달라는 소청을 제기했으나 기각당했습니다. B씨 점수 또한 가산점을 합치지 않으면 이른바 커트라인 밖이었습니다.

소청심사위원회는 "임용취소를 통해 공무원 채용시험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공익상의 필요가 B씨가 입게 될 개인적인 불이익에 비해 적다고 할 수 없다"며 임용취소 처분을 정당하다고 봤습니다.

◇12년 전 탈락자도 보상받을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A씨의 합격으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던 당시 공립유치원 임용시험 경쟁자들도 보상해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A씨의 임용 취소에 따라 당시 임용에서 탈락한 사람들도 구제받을 수 있을까요?

실제 임용시험 시 부당한 절차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응시자가 불합격처분 취소처분을 받은 사례가 존재합니다. 지난 2006년 서울시는 공립중등학교 영어교사임용 시험 중 일부 말하기 시험 점수에 따라 가산점을 30점까지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가 소송에 휘말렸습니다.

교육공무원법은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10%인 10점까지만 가산점을 부여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 규정을 어긴 거죠. 과한 가산점을 이유로 자신이 탈락했다고 주장한 원고가 소송을 제기했고 행정법원은 원고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공지사항을 어긴 합격자들 때문에 합격선에서 밀려난 이들도 구제받은 바 있습니다. 지난 2008년에는 서울시 공립 중등학교 미술교사 임용 실기 시험에선 규칙을 위반하고 시험을 치룬 이들이 합격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일부 탈락자가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자 재판부는 "시험은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므로 모든 응시자들은 동일한 조건하에서 경쟁해야 한다"며 이들이 탈락할 경우 합격이 가능한 지원자에게 불합격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마찬가지로 A씨의 합격으로 탈락해야 했던 이들도 원칙적으로 행정소송을 통해 구제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A씨의 임용취소 처분이 벌써 2년 전에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취소소송은 처분 등이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 이내에 제기해야 하고 처분 등이 있은 날부터 1년이 지나면 제기하지 못합니다. 이미 1년의 기한이 지나 법률상 행정소송 제기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다만 행정소송법 제20조 단서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기간에 상관 없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이 명시돼 있습니다.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의 여부는 제소기간 도과의 원인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판단됩니다. 즉 사회통념상 제소기간이 지났어도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맞다는 결정이 내려질 때 비로소 소송을 하게 됩니다.

글: 법률N미디어 정영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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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법률N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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