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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오코노기, 귀향 고민하던 스가 부모 만나 “아들 맡겨달라”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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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日 총리를 만든 3人

가업 권유 부모 설득해 정치입문 도와

통상산업상 올랐을 땐 비서관 기용도

스가는 3남에 국가공안위원장 맡겨

가지야마 前자민당 간사장은 정치스승

스가 첫 중의원 의원 선거 때 지원 유세

“궁금한 것은 직접 조사” 신념 심어줘

아베 前총리는 우익 국가관 심어줘

북한·납북자 문제로 서로 의기투합

총무상·관방장관 맡으며 승승장구

세계일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세습 정치인이 판치는 일본 정계에서 시골에서 올라와 자수성가한 정치인으로 주목받는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좌우명을 가진 스가 총리의 인생과 정치역정에는 세 사람과의 인연과 세 권의 책이 등장한다. 스가 시대를 연 3인·3책을 정리한다.

◆정치입문 조력 오코노기 히코사부로

오코노기 히코사부로(小此木彦三郞·1928∼1991) 전 통상산업·건설상은 정치판에 발을 내디딘 청년 스가를 12년간 단련시킨 인물이다. 스가는 24세이던 1975년 4월 비서로 오코노기 히코사부로 중의원(하원) 의원과 인연을 맺는다. 호세이대 졸업 후 잠시 기업에 있다가 같은 대학 대선배인 나카무라 우메기치 전 중의원 의장 사무소 직원 경력이 전부였을 때다. 스가는 오코노기 비서 7명 중 최연소이자 최말단이었다.

가업인 농업을 이으라는 부친의 말을 뿌리치고 고향을 떠났던 비서 스가는 이때까지만 해도 귀향을 놓고 고민했다고 한다. 부모도 계속 고향 아키타로 돌아오라고 재촉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오코노기다. 1977년 자민당 후보 지원 유세를 위해 아키타현에 간 오코노기가 갑자기 “너희 집에 가자”며 스가의 집을 찾아갔다고 한다. 스가 부모를 만난 오코노기는 “조금 더 아들을 제게 맡겨주시지 않겠습니까”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스가는 이때 정치의 길을 결정했고, 부모도 더는 고향에 돌아오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오코노기는 1983년 통상산업상에 올랐을 때 스가를 장관 비서관으로 데려갔다. 1987년 스가가 처음 선거에서 당선해 시의원이 된 요코하마가 그의 정치적 기반이기도 하다. 오코노기는 1991년 중의원 계단에서 헛걸음질로 쓰러져 63세라는 한창 일할 나이에 사망했다.

스가와 오코노기 가문의 인연은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다. 스가 정권에서 국가공안위원장에 기용된 오코노기 하치로(55)가 은인의 3남이다. 하치로가 초등학생 때 아버지 비서였던 스가는 큰 형님 같은 존재라고 한다. 1993년 아버지 선거구에 28세의 하치로가 출마해 당선했을 때 선거대책본부장이 요코하마의 막후 시장으로 불리던 시의원 스가였다. 하치로는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선 스가 측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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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스승 가지야마 세이로쿠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1926∼2000) 전 자민당 간사장은 스가가 정치적 스승으로 추앙하는 인물이다. 오코노기 히코사부로와는 맹우였다. 1996년 스가가 중의원 의원 선거에 처음 나섰을 때 지원유세를 했다. 스가는 관방장관 시절 “나는 위대한 우국의 정치가 가지야마 세이로쿠 선생 옆에서 일했기에 미래를 향한 메시지를 받을 수 있게 된 거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가지야마는 “관료를 믿지 말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았다고 한다. “관료는 설명의 천재다. 본인이 궁금한 것은 본인이 조사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스가는 “이 가르침을 가슴에 안고 판단력을 몸에 익히도록 유의했다”고 말했다.

스가가 장관 시절부터 인사권을 가지고 관료 사회를 장악하는 대가가 된 배경에는 가지야마 세이로쿠가 있는 셈이다. 1998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소속 파벌인 평성연구회 영수인 오부치 게이조에 맞서기 위해 가지야마가 파벌을 이탈했을 때 3선 의원 스가도 따라나섰다. 가지야마는 본인의 총재 선거 패배와 파벌 이탈로 둥지를 잃은 스가를 위해 굉지회(宏志會) 영수에게 머리를 숙여 새 근거지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2000년 교통사고로 정계를 은퇴한 뒤 그해 사망했다.

아베 내각에 이어 스가 내각에서 유임된 가지야마 히로시(65) 경제산업상이 아들이다. 스가는 이바라기현에 있는 가지야마 세이로쿠의 묘를 참배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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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동체 아베 신조 전 총리

2000년대 들어선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당시부터 미래의 총리라는 말을 듣던 아베 신조(安倍晋三·66) 전 총리와의 만남이 스가의 운명을 이끈다. 아베 전 총리는 스가에게 우익 국가관이나 역사수정주의사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스가는 대놓고 아베 전 총리로 인해 국가관이 생겼다는 말도 했다. 2014년 5월 발행된 주간지 선데이마이니치와의 인터뷰에서 “정직하게 말하면 국가관이라는 것은 그때까지 나에게는 없었다. 아베씨의 이야기를 듣고 대단하구나 (생각했다). 아베씨가 관방 부(副)장관 때였다”라고 말했다.

스가가 북한과 납북자 문제로 아베 전 총리와 의기투합했으며 이후 제1차 아베 정권에서는 총무상, 제2차 정권에서는 관방장관을 맡았다는 것은 잘 알려졌다. 스가 내각에서는 아베 전 총리 동생인 기시 노부오(61)가 방위상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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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요토미…’ ‘리더를…’ ‘삼국지’… 무장·전장 배경의 책 즐겨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지난해 9월 일본 격주간지 프레지던트에 ‘사람의 그릇을 키우는 책’이라는 주제로 쓴 기고문에서 애독서 3권을 추천한 적이 있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 ‘삼국지’, 사카이야 다이치의 ‘도요토미 히데나가(豊臣秀長)-어느 보좌관의 생애’ ,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의 ‘리더를 목표로 하는 사람의 심득(心得·It Worked for Me : In Life and Leadership)’이다. 모두 무장(武將)과 전장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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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학생 때부터 읽었다고 한다. “작품의 등장인물이 좋은 관계이었다가 배반했다가 하는 일의 연속”이라며 “어떤 무장이 좋다기보다는 국면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관계를 읽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충절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기심을 품는 사람도 나타난다”며 “그런 점은 오늘날에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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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나가’

1987년 요코하마 시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전후에 우연히 책방에서 접했다. 임진왜란 한 해 전에 숨진 히데나가(1540∼91)는 한반도와 악연인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98)의 아버지 다른 동복동생으로 알려졌다. 형이 대업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운 도요토미 정권 수립의 일등공신이다.

스가 총리는 “농가에서 태어나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시작한 히데요시가 어떻게 대성공을 했느냐는 원래부터 관심이었다”며 “히데요시가 세상에 나온 뒤에는 역시 이런 확실한 버팀목(히데나가)이 있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됐다”고 적었다. 이어 “히데요시는 처음엔 천하를 취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히데나가의 보좌를 받으며 커다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돌출해 나왔다”며 “리더가 곤란에 직면했을 때 그 뒤에서 (리더를) 지지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스가 총리는 또 “판단은 총리 본인이 할 필요가 있지만 이쪽(보좌역)에서 총리에게 여러 가지 정보나 상황을 확실히 전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는 국가경영에 대한 것이지만 회사 경영도 같다. 그래서 이 책은 본인이 완전한 판단을 해야 하는 입장의 경영자가 읽었으면 하는 책”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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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를 목표로 하는 사람의 심득’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이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리더십에 관한 13가지 원칙을 담고 있다. 스가 총리는 2012년 12월 관방장관 취임 전후 처음 읽었다고 한다.

스가 총리는 파월의 13가지 원칙 중 특히 ‘사소한 것을 점검하라’는 원칙에 공감한 듯하다. 스가 총리는 “(세상에서는) 세세한 것까지 (관방)장관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서 “그러나 (나는) 본줄기가 틀리지 않은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도 체크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파월의 글로 내 나름대로 확신을 갖게 됐다”며 “지도자는 먼저 현장을 전부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세세한 것을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르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은퇴 후 영어를 공부해 (원문으로) 읽고 싶다”고 적었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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