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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내 손에 이효리 스마트폰 쥔 줄? 세로 속 ‘압도적 일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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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세로 화면 콘텐츠의 진화

카카오TV, 세로 영상 콘텐츠 화제

카톡·앱·캡처, 스토리텔링 도구로

쉽게 공감되는 ‘일상 감정’ 싣고

단독샷 클로즈업에서 위력 발휘

정서 전달·서사 완결성 부족했던

세로 콘텐츠 한계 넘어서며 눈길


한겨레

카카오티브이(TV)는 최근 스마트폰 화면 실시간 캡처 영상을 스토리텔링 수단으로 삼은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이런 구성은 가로 화면의 비율이 긴 데스크톱이나 랩톱으로 감상할 땐 느낄 수 없는 몰입감을 자아낸다. 가수 이효리가 출연한 <페이스아이디>(사진1), 작사가 김이나가 매주 새로운 게스트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토크쇼 <톡이나 할까?>(사진 2·3) 배우 박은빈 편. 카카오TV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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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윌리엄 케네디 딕슨이 키네토스코프에 들어갈 너비 35㎜ 필름의 프레임 규격을 4:3으로 정한 이래로 100여년 동안 영상 매체는 가로가 더 긴 종횡비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후 1.37:1이나 비스타비전(1.85:1), 시네마스코프(2.39:1) 등의 다양한 비율이 등장했으나, 모두 가로 시야를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였을 뿐 ‘가로가 더 길다’는 원칙을 벗어난 적은 없었다.

가로가 더 길다는 원칙은 왜 그토록 자연스러운 게 되었을까? 한번 산업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을 중간에 바꾸기는 어려웠으리라. 극장도 가로로 더 긴 스크린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고, 티브이도 가로가 더 긴 영상 포맷으로 제작되었다. 그 원칙을 깨려면 산업 전반에 표준으로 자리 잡은 영사 환경을 다 뒤집어엎는 대역사가 필요하다. 게다가 인간의 시야각은 원래 상하보다 좌우가 더 넓다. 위로는 눈썹에 가리고 아래로는 코에 가리는 상하 시야보다, 그런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좌우 시야가 넓은 게 자연스럽다. 인류가 중력과 싸울 필요 없는 수평 활동에 더 익숙하다는 것도 한몫했다. 인류는 지평선과 수평선을 보며 살아왔고, 물줄기가 옆으로 흘러가는 강을 중심으로 초기 문명을 건설했다. 아무리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은 마천루라도, 각 층을 방문하면 가로가 더 긴 공간들이 등장한다. 인간은 가로가 더 긴 프레임에 본능적인 편안함을 느낀다.

제작도 감상도 ‘세로’여야만 하는 당위


그 본능적인 편안함은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선보인 순간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이폰은 기존의 스마트폰과 달리 정전식 터치스크린과 멀티터치 기능을 활용해 물리 키보드를 제거했고, 덕분에 하단의 홈 버튼을 제외하면 전면을 다 화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최초의 스마트폰이었다. 귀와 입을 커버할 만큼 크면서도 한 손에 들어오기 좋은 형태를 취하려다 보니, 제품은 세로로 긴 직사각형 형태가 됐다. 한 면 전체를 화면으로 활용할 수 있어 그를 이용해 영상을 보는 일이 가능한, 세로로 긴 기계가 등장한 것이다. 영화관이나 티브이에서 재생될 것을 전제로 할 때에는 불가능했던 ‘세로 영상 콘텐츠’에 대한 상상은, 사람들의 손에 언제든 쉽게 가로세로 방향을 바꿔 쥘 수 있는 초고해상도 스크린을 쥐여주며 성큼 현실로 다가왔다.

물론 여전히 절대다수의 영상 콘텐츠는 가로가 긴 프레임이고, 사람들은 동영상을 볼 때는 스마트폰 방향을 가로로 바꿔 쥐는 쪽을 택한다. 세로 영상 콘텐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대 위 아이돌 그룹 중 ‘최애’ 멤버만을 따라다니며 그 한 명의 퍼포먼스를 세로 화면 가득 채우는 형식의 ‘직캠’ 콘텐츠들이나, 딩고 뮤직이 유튜브에서 선보여 히트를 친, 노래하는 가수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담아내며 몰입감을 강조한 ‘세로 라이브’ 등은 대표적인 세로 영상 콘텐츠다. 15초짜리 세로 영상을 공유하는 소셜미디어 ‘틱톡’ 또한 세로 영상 콘텐츠 회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세로 영상은 가로 영상에 비해 프레임 안에 여러 사람을 담기 어렵다는 한계가 선명하다. ‘최애’ 멤버 한 명만 따라다니는 ‘직캠’이나 가수 한 명에게 집중하는 ‘세로 라이브’라면 몰라도, 토크쇼나 예능처럼 여러 사람이 나오는 완성도 있는 영상 콘텐츠는 아직 세로로 성공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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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최근 출범한 카카오티브이(TV)가 선보인 오리지널 콘텐츠들의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출범 직후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일등 공신인 <페이스아이디>는 내용만 보면 평범한 스타 리얼리티 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첫 주자인 이효리가 요가를 하고, 남편 이상순과 농담을 주고받고, 유기견 봉사를 하러 가고 화보 촬영을 하는 내용은 사실 그다지 새롭지 않다. 사람들을 사로잡은 건 그 형식이다. <페이스아이디>는 이효리의 일상을 찍은 영상과 그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화면 실시간 캡처 영상을 섞어서 함께 사용한다. 영화 <서치>(2018) 등에서 선보인, 디지털 기기 화면을 활용해 스토리를 전개하는 ‘스크린라이프’ 장르를 부분적으로 차용한 것이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자신이 손에 쥔 스마트폰 화면 위에, 이효리의 스마트폰 화면이 투사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효리가 사진 앱을 열어 자신이 찍었던 강아지 사진들을 찾고, 인스타그램 앱을 열어 사진을 업로드하고, 남편 이상순과 페이스타임 영상통화를 나누는 과정들이 내 폰 화면 위에서 벌어진다. 마치 내 손 안에 이효리의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것 같은 압도적인 몰입감은, 영상을 데스크톱이나 랩톱으로 감상할 때에는 체험할 수 없다. <페이스아이디>는 오로지 지금 손에 쥔 스마트폰을 통해 감상할 때에만 그 진가를 발휘하는 리얼리티 쇼고, 그래서 세로로 제작되고 감상해야만 하는 당위를 지닌다.

비슷한 접근은 <카카오티브이(TV) 모닝>의 화요일 코너 <톡이나 할까?>에서도 이어진다. 작사가 김이나가 매주 새로운 게스트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이 토크쇼는 대화의 수단으로 말 대신 카카오톡 메신저를 택했다. 단독 샷 클로즈업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세로 영상답게, 김이나와 게스트가 스마트폰 화면에 뜬 상대의 말을 읽고 웃고, 화답할 멘트를 고민하고, 메시지를 보낸 뒤 상대의 표정을 살피며 답을 기다리는 모습은 화면 위에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그 드라마틱한 클로즈업 위에 익숙한 카카오톡 메신저의 노란색 말풍선이 세로로 차곡차곡 쌓이는 이 조용하고 독특한 토크쇼는, 쇼의 형식처럼 조용하지만 활발하게 입소문을 타는 중이다.

메신저를 이용한 토크쇼답게 <톡이나 할까?>는 메신저 대화 특유의 설렘과 초조함을 고스란히 쇼의 동력으로 활용한다. 초면의 상대와 메신저로 대화할 때 겪는 가벼운 긴장과 어색함, 메시지를 입력하다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며 말을 고르는 조심스러움, 상대의 답신이 오래 걸리면 괜히 내가 뭐 잘못 말한 걸까 걱정하게 되는 초조함, 상대의 예상치 못한 농담에 긴장이 허물어져 함께 ‘ㅋㅋㅋㅋㅋㅋ’를 타이핑하게 되는 순간의 쾌감 같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화면에 수놓아진다. 메시지가 세로로 쌓이는 스마트폰 메신저의 시각적 특성과, 메신저로 대화를 나눠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만한 감정의 흐름을 동력 삼은 <톡이나 할까?> 또한, 스마트폰을 이용해 세로로 볼 때에야 비로소 그 매력이 극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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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프로그램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세로로 봐야만 하는 당위’를 설득하기 위해 스마트폰의 유저 인터페이스를 차용한 건 결코 단순한 기믹(gimmick·세간의 이목을 끌기 위한 수법)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사진을 찍고 음성 메모를 남기고 인터넷에 접속하고 대화를 나누고 은행 업무를 보고 메일을 확인하는 그 모든 일상을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처리한다. 스마트폰 유저 인터페이스는 이제 엄연한 인간 활동의 한 양식이고, <페이스아이디>와 <톡이나 할까?>는 이를 스토리텔링의 주요 도구로 활용함으로써 영상을 ‘스마트폰을 이용해 세로로 봐야만 하는 당위’를 확보한다.

흔들리는 130년 ‘가로 비율’의 시대


세로 영상을 만들고 유통하는 게 가능해진 시절에도 사람들은 ‘굳이 세로로 영상을 만들고 봐야만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직캠’이나 ‘세로 라이브’처럼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영상이라면 몰라도, 더욱더 내밀한 정서의 전달과 서사적 완결성을 필요로 하는 장르에서 굳이 새로운 화면비를 시도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대항마가 되겠다며 야심차게 출범한 스트리밍 서비스 ‘퀴비’가, 가로로 영상을 보다가 화면을 세로 방향으로 돌리면 등장인물의 클로즈업 샷으로 전환되는 ‘턴스타일’ 기술을 선보이고도 사용자들을 설득하지 못한 게 대표적인 예다. ‘세로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기능이었으나, ‘굳이 세로로 봐야 하나?’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 탓이었다.

어쩌면 카카오티브이의 <페이스아이디>와 <톡이나 할까?>는 퀴비가 미처 해내지 못한 일, 즉 기존의 가로 영상에서만 가능했던 장르인 리얼리티 쇼와 토크쇼 장르에 ‘세로로 봐야만 하는 당위’를 부여하는 데 성공한 첫 콘텐츠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윌리엄 케네디 딕슨이 4:3 비율을 정한 지 130년, 아이폰 출시 13년 만에, 마침내 영상 화면비의 가로 원칙이 뒤집히고 있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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