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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집단소송제' 전면 시행...로펌업계 '메가톤급' 시장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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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어가던 변호사 시장에 단비가 내린거죠." (서초동 변호사 A씨)

법무부가 현재 증권 분야에만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집단소송제를 모든 분야로 확대하기로 하면서 로펌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손해배상청구의 적용 범위가 사실상 모든 상행위로 대폭 넓어지면서, 관련 법률 자문이 쇄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비즈

조선DB



법무부가 지난 25일 오후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상법 개정안을 내놓자 로펌업계는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총선공약이기도 했고 국회에서 수차례 논의되기도 했지만, 이렇게 난데없이 내놓을 줄은 전혀 몰랐다는 분위기다.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건 대형 로펌이었다.

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파트너 변호사 B씨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그날 바로 브리핑을 하고 회의를 열었다. 경제·산업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올 법안으로 로펌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가 29일 입법예고한 집단소송법 제정안은 분야에 제한을 두지 않고 도입하는 것이 골자다. 피해자가 50인 이상인 사건에서 1~2명이 소송을 제기해 배상 판결이 나오면 나머지 모든 피해자에게도 기판력(법의 효력)이 미쳐 배상할 의무가 발생한다. 또 악의적 위법 행위를 한 기업에 실제 손해보다 최대 5배까지 배상 책임을 지게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상법에도 적용시키기로 했다. 아울러 "피해구제의 형평성을 위해" 법이 시행되기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집단소송을 낼 수 있도록 했다.

법무부는 입법예고 후 40일간 관계부처 협의를 거친 뒤, 연내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겠다는 목표다. 그 사이 공청회와 토론회 등을 통해 의견 수렴을 거치는데, 큰 틀이 유지되는 한 소송 증가는 불가피하다는게 법조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다만 이른바 ‘합의를 전제로 한’ 집단소송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집단소송은 입증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통상 재판까지 가는 과정이 길다. 또 재판이 열렸어도 손해배상액이 인정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대표적인 집단소송 사례인 신용카드 정보유출 사건만 해도 1인당 10만원의 배상액을 받기까지 약 2년이 걸렸다. 즉 애초부터 재판 전 단계에서 ‘합의’를 보기 위한 조정 관련 자문이 크게 늘어날 거라는 전망이다.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 C씨는 "경영권 승계나 비도덕적 형사사건 등 기업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이슈가 생겼을때 원고측에서 집단소송을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면서 "반대로 기업은 해당 이슈가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원고측이) 원하는 수준에 상당히 근접한 형태의 합의금을 주고 사건을 종료하는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소를 제기하는 원고측 입장에서도 향후 손해배상액을 받을때까지 몇년이 걸릴지 모르고, 재판을 거쳐 판결을 받는다고 해도 손해액 자체가 만족할 만한 수준인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법무부가 도입키로 한 '한국형 증거개시제'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법무부가 변호사 시장에 대놓고 먹거리를 던져줬다"는 말까지 나온다. 증거개시제는 사실상 미국의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본안 재판이 개시되기 전에 사실 확인 및 증거수집을 하는 것을 말한다.

증거개시제가 도입되면 당사자 양측이 가진 증거와 서류를 서로 공개하기 때문에 쟁점이 명확해진다. 반면 정식 재판 전에 관련 증거를 모두 수집 처리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변호사 등 많은 전문 인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악용될 경우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미국 변호사 자격을 가진 변호사 D씨는 "증거개시제가 도입되면 기업들은 매우 광범위하면서도 방대한 자료를 사전에 검토해야 하고 그 중에 선별해서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그런데 공개된 자료가 때로는 스스로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치명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50인 이상의 대표 1인이 소송할 경우, 기판력(법이 미치는 효력)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미친다는 점에서 소송 건수가 늘어나는 폭이 제한될거라는 의견도 있다.

집단소송에서 원고측을 대리한 경험이 있는 서초동 변호사 E씨는 "과거엔 자기 권리를 구제받으려면 꼭 직접 소송에 참여해야 했지만, 이젠 명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으면 기판력이 전체에 미친다는 점에서 소송 건수 증가폭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집단소송 활성화가 ‘로펌업계의 양극화’를 더욱 부추길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형 로펌들은 주로 대기업 등 피고측을 대리하고, 중소형 로펌들은 원고측을 대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점에서다. 다만 오히려 밥줄이 끊길 위기에 처한 소형 로펌이나 기성 세대에 일감을 뺏긴 청년 변호사들에게 새로운 일거리가 생길거라는 반응도 나온다.

‘집단소송 활성화’는 로스쿨에 관심이 있거나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화젯거리다. 서울대 게시판 스누라이프에는 "이거 보고 로스쿨로 정했다" "속절없이 무너지던 개업 옵션에 그나마 하방 지지가 생기는 것인가" "대호재 아니냐"라는 반응이 올라왔다.

또 "법조계 숙원사업 중 하나였는데 너무 휙 진행됐다" "변호사들만 좋고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갈등 비용은 더욱 증가하는 것 아니냐" "손해배상으로 인한 기업들의 손해는 결국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 같다" 는 글들도 속속 올라왔다.

이미호 기자(best222@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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