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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김금숙의 강화일기] 닭은 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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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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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숙 ㅣ 그래픽노블 작가

시골에 산다고 모두 닭을 키우지는 않는다. 냄새가 심할 것이다. 책임감을 가지고 보살펴야 할 것이다. 닭집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집 마당은 반려견 당근이와 감자가 뛰어놀기에도 작다. 텃밭만으로도 겁 없이 자라는 풀 때문에 감당이 안 된다. 무엇보다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늘 그렇듯 남편의 꾸준한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다. 봄이 되자 마을에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살고 일하는 큰나무 카페에서 병아리를 오십 마리 정도 산다고 했다. 우리도 같은 양계장에서 다섯 마리를 샀다. 병아리를 실외에 내놓기에는 날이 아직 꽤 쌀쌀했다. 보일러실 한쪽에 박스를 놓고 벼농사 짓는 이웃에게 볏짚을 얻어 바닥에 깔았다. 국그릇에 물을 붓고 접시에 모이를 담아 넣어주었다. 낮에는 햇빛 대신 불을 켜 정성으로 보살폈지만 다섯 마리 중 세 마리가 차례로 죽었다. 집 옆에 땅을 파서 묻었다. 끝까지 안 키우겠다고 할걸. 우리가 무얼 잘못해서 죽었나. 마음이 안 좋았다.

5월 중순, 병아리를 야외에서 길러도 될 만큼 날이 따스해졌다. 집 아래에 있는 풀밭 주인의 허락을 받아 그곳에 닭집을 지었다. 마을 어르신이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던진다. 두더지한테 잡아먹힐 수도 있다. 고양이가 물어갈 수도 있다. 산짐승이 내려와 죽일 수도 있다. 닭집은 겉모양만 보자면 툭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질 것처럼 엉성해 보였다. 그래도 두 달 넘은 장마와 잦았던 올해 태풍에 버텨주었다.

살아남은 두 마리가 암탉이 될 무렵 강화읍 풍물시장에서 닭 세 마리를 샀다. 새로 온 닭 세 마리는 먼저 있던 닭 두 마리보다 어렸다. 그것들은 먼저 있던 암탉의 눈치를 보았다. 대장인 듯한 암탉이 새로 온 닭에게 텃세를 부렸다. 수컷은 제법 컸다고 어느 날 아침 한참을 컥컥거렸다. “꼬끼오”가 아닌 “꼬끄끄끄” 우는데 기특하기도 했지만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아직은 덜 여문 우리 집 수탉 울음소리는 다른 집의 수탉 울음소리와 비교해 확연히 구분할 수가 있었다. 누가 닭이 해 뜨면 운다고 했던가? 우리 집 수탉은 하루 종일 시도 때도 없이 운다.

비가 하염없이 왔다. 또 태풍이 온다고 마을의 확성기에서는 온종일 태풍주의보를 울려댔다. 실컷 풀을 뜯어 먹으라고 닭을 풀밭에 풀어놓았다. 바람이 점점 거세졌다. 태풍이 심해지기 전에 닭집 안으로 쫓는데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살아남은 대장 노릇 하던 암탉이었다. “피우피우피우” 부르면 왔는데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았다. 풀밭을 여기저기 뒤져보아도 없었다. 짐승이 물어간 것일까? 큰 참나무 가지의 몸부림 소리가 밤새 귀를 때렸다. 잃어버린 닭은 바깥 어딘가에서 비바람을 맞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었다. 어서 태풍이 지나고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이른 아침, 닭을 찾으러 나갔다. 쉽게 찾았다. 비를 맞아 젖은 채 닭장 옆, 큰 참나무 아래에 있었다. 순간 코끝이 찡했다. 감기 걸리지 말라고 약을 주고 닭집에 넣었다. 어디 갔다 왔느냐고 나무라고 싶었지만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가장 힘센 닭이 가장 약해져 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했다. 밖에서 밤을 보낸 대장 닭이 닭장에 들어가는 것을 꺼렸다. 다른 닭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듯 보였다. 특히 대장 닭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작은 닭이 강해져 약해진 대장 닭을 쪼아댔다.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다. 장마가 끝났는데도 비가 계속 내렸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닭장 문을 열어보니 대장 닭이 닭장 한쪽에 빗물이 고인 진흙더미에서 머리가 갈라진 채 쭈그리고 있었다. 피가 나고 상처가 심했다. 어떤 닭이 그랬는지 짐작이 갔다. 무섭고 잔인한 보복이었다.

따뜻한 보일러실에 자리를 깔고 상처 부위를 소독한 뒤 항생제를 먹였다. 닭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듯 잘 움직이지 않았다. 제발 살아줘. 힘을 내렴. 내일 병원 가자. 다음날, 남편이 먼저 보일러실로 갔다. 내가 당근이와 감자에게 아침밥을 주는 동안 보일러실 옆에서 땅을 파는 소리가 났다. 곧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죽었어.” 고개를 떨구며 그가 말했다. “묻어주고 왔어?” 내가 물었다. “응.” 키우던 생명을 보내는 건 슬프다. 닭을 키우면서 닭을 먹어 본 적이 없다.

대장 닭을 죽인 닭은 친구인 줄 믿었는데 등 뒤에서 칼을 꽂는 인간과 닮았다. 기회를 노렸다가 약점을 잡아 공격한다.

밖에서 남편이 부른다. “와! 우리 닭이 첫 달걀을 낳았어.” 어느 닭이냐고 내가 물었다. 대장 닭을 죽인 닭이란다. 애썼다. 그래, 인간은 인간이고 닭은 닭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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