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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시론] 늦었지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 / 김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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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성진 ㅣ 변호사·사회적가치센터 대표

나쁜 짓은 못 하게 해야 한다.

자기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회삿돈을 빼먹는 짓은 나쁘다. 이런 기업 내 도둑을 막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다. 기업에 독립적인 감시자를 두면 그 눈이 무서워 도둑질을 못 한다. 훔친 것을 확실하게 토해내도록 하면 도둑질에 가담할 이유가 없게 된다.

‘공정경제 3법’, 특히 상법은 이렇게 기업에서 빼먹는 도둑을 막자는 법이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법인데 정작 재벌로 대표되는 재계는 반대하고 있다. 독립적인 감사위원 선임과 이중대표소송 제도는 2012년 박근혜 대통령 후보 공약이었다. 2013년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나서 입법예고까지 했지만 박 대통령이 재벌들 반대로 꼬리를 내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2018년 지금의 야당도 상법 개정에 합의한 바 있다. 2013년 입법이 되었다면? 만시지탄일 뿐, 더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다.

먼저 ‘독립적인 감사위원’.

재계는 독립적인 감사위원이 선출되면 경영권에 위협이 된다고 한다. 어쩌면 맞는 말일 수 있다. 총수가 자기 호주머니 채우는데 회사를 장기판의 말처럼 움직이는 것이 경영권이라면 독립적인 감사위원은 경영권에 위협이 된다.

첫번째 만시지탄. 삼성의 사실상 총수 이재용 부회장이 2015년 자신의 지분 확대를 위해 제일모직에 유리하고, 삼성물산에는 불리한 합병안을 밀어붙였다. 삼성물산 사외이사들은 저녁에 갑자기 전화로 ‘내일 합병 이사회를 한다. 증시 개장 전인 아침 7시 반까지 나오라’고 해도 군소리 없이 나가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안을 1시간 만에 통과시켰다. 회사에 손해가 나도 군사작전 하듯 시간 맞춰 총수 손을 들어줄 사람을 뽑는 것이 경영권이라면 독립된 감사위원이 경영권에 위협이 되는 것이 맞다.

세상 어디에도 우리의 재벌처럼 총수의 이익이 모든 계열회사에서 최우선시되는 나라도 없고, 총수 이익을 위해 계열사가 희생되는 것이 방치되는 나라도 없다. 미국의 감사위원 독립성은 우리와 비할 바가 안 되고, 독일은 노동자가 뽑는 이사가 감독이사회의 절반을 구성한다.

다음으로 ‘이중대표소송’.

재계는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에 손해를 끼친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손해를 배상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경영권에 위협이 된다고 한다.

이것도 어쩌면 맞는 말일 수 있다. 총수가 지배하는 자회사 이사에게 회사에 손해를 끼쳐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이 경영권이라면, 이중대표소송이 그런 경영권에 위협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도 만시지탄 실화다. 하나은행은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불법적으로 지배하면서 막대한 돈을 빼먹었다. 그래도 하나은행은 외환은행 돈을 빼먹은 론스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았다. 론스타를 상대로 한 소송은 자신과 론스타의 거래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이 론스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을 거부하니, 하나은행의 주주가 대신 나서서 론스타에 손해배상으로 4조원가량을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했다. 분명히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을 위한 소송이지만, 2018년 말 대법원에서 위법하다는 이유로 졌다. 당시 이중대표소송이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을 위해 4조원을 되찾을 길이 막힌 것이다. 하나은행이 외환은행에 손해를 끼친 론스타를 봐줄 수 있는 권한이 경영권이라면, 이중대표소송은 분명히 경영권에 위협이 되는 것이다.

소를 잃었지만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회삿돈을 빼돌린 자는 그 누구든 배상을 하도록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독립적인 감사위원과 이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총수가 아니라 회사에 좋다. 총수든 그 누구라도 회삿돈을 빼먹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삿돈을 제 주머닛돈과 구별할 줄 아는 절대다수의 기업인들이 이를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기업에 좋은 것이 우리나라에 좋다. 총수가 계열사 돈을 빼돌리면, 그 회사는 그만큼 안 좋아진다. 총수가 회삿돈을 빼돌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에 좋은 것이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는 기업에서 빼먹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기업 내 도둑이 없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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