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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이슈 미술의 세계

미술관에 펼친 생명의 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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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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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처럼 전시장 한 벽면을 차지하고, 길고 큰 덩이리째로 바닥에 놓인 초콜릿 색깔 작품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서울 송은아트스페이스 개인전 '모습 某濕 Wet Matter'에서 만난 김주리 작가는 "흙과 물, 스폰지 등 혼합재료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 소리를 듣자 작품 안에서 어떤 생명체가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의 나래를 폈다. 흙과 물은 생명을 키우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에 있는 진흙을 굳이 미술관으로 옮겨놨을까. 작가는 그 이유에 대해 "유연한 경계 넘기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북한과 마주보는 중국 단둥 지역 압록강 하구 습지를 답사하면서 느낀 소회를 작품에 반영했다고 한다. 한국인과 중국인, 북한사람, 북한 화교, 조선족이 이 접경지역에서 경제·문화적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의 생활 방식이 보여주는 유연한 경계 넘기가 압록강이라는 자연의 경계선에서 기인하는 것에 주목했다. 그래서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삶을 은유하는 습지 풍경을 전시장에 들여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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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리 설치 작품 모습 某濕 Wet Matte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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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물이 뒤섞인 습지가 솟아 직립한 듯한 작품 구조가 살아있는 생명체를 상상하게 한다. 실제로 물이 조금씩 흘러내리기도 한다. 스폰지에 바른 진흙 형태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시장 온도를 낮춰 주변이 싸늘하다. 어두운 전시장에서 조형물로 재탄생한 습지가 기묘하게 보인다. 큰 덩어리가 무덤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흙은 생명의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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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리 모습 某濕 Wet Matte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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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문화재단은 이번 전시에 대해 "호명할 수 없는 형상(모습)과 그것의 젖은 상태(某濕), 생명을 환기하는 물기에 관한 사유(Wet Matter)를 통해 흙과 물이 지닌 생명의 감각을 체현하고, 자연의 한 순간이자 순환의 일부로서 관계하는 경험을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경희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한 작가는 2010년 제10회 송은미술대상 대상을 수상해 이번 전시를 열게 됐다. 그는 자연에서 발생하는 생멸(生滅)의 은유를 포착해 물질의 순환과 그 안에서 일시적으로 머무는 시간 경험을 조형해왔다. 전시는 11월 21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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