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6 (월)

엔씨·가스公·삼일회계…DB형·DC형 동시 운영기업 늘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퇴직연금도 투자시대 (中) ◆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기업 대부분이 도입하고 있는 확정급여형(DB형) 퇴직연금이 최근 저조한 수익률로 기업 재무에 끼치는 부담이 커지자 확정기여형(DC형) 퇴직연금을 병행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신규 퇴직연금 도입 사업장 대부분이 DC형만 도입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까지 운용 노력에 따라 높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DC형으로 가다 보니 10년 후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DC형이 퇴직연금의 대세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7일 한국연금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퇴직연금 시장의 62.4%를 차지한 DB형 퇴직연금은 2023년엔 55.6%, 2030년엔 44.2%로 규모가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DC형은 작년 26.1%에서 2030년엔 38.8%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개인형퇴직연금(IRP)까지 합하면 2027년에 이미 근로자가 투자에 대한 책임을 지는 퇴직연금이 51%로 DB형을 넘어선다. DB형은 신규 가입 회사가 많지 않은데 근로자 퇴직에 따라 적립금이 줄어들어 전체 퇴직연금 시장 성장세에 한참 못 미치는 성장을 이어간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도 신규로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회사는 거의 다 DC형을 선택하고, 기존에 DB형으로 운용한 회사들도 DC형 단독이나 DB형과 DC형 병행으로 가고 있다. DB형을 운영하던 엔씨소프트, 한국가스공사, 삼일회계법인 등도 최근 들어 DC형 병행으로 바꿨으며 상당수 직원이 DC형을 선택했다. 두 유형을 병행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직원 중 35% 이상이 DC형을 선택했다.

김성일 한국연금학회 박사는 "회사는 저금리·저수익률 때문에 DB형보다는 DC형을 선호하게 됐고 젊은 세대 근로자 역시 DC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동학개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회 전반에서 주식 투자에 대한 마인드가 바뀌다 보니 투자해 노후의 수익원을 더 불려야 한다는 인식이 DC형 비중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근로자가 퇴직할 때 회사가 약속한 퇴직급여를 지급하는 DB형은 그동안 퇴직연금의 일반적 형태였다. 퇴직연금 제도 전의 퇴직금 제도 자체가 퇴직 시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보니 퇴직금을 사외 금융사에 적립하는 퇴직연금 제도하에서도 회사가 운용을 맡게 됐다. 근로자들에게 줘야 하는 퇴직급여 이상의 이익이나 손실은 모두 회사가 감당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실질임금 상승률을 못 따라가는 DB형 퇴직연금 수익률 때문에 회사의 부담은 커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실질임금 상승률만큼은 매년 적립금이 불어나야 나중에 퇴직 시점 평균 임금에 맞춰 퇴직급여를 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면 회사가 그 갭만큼을 다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 갭만큼 적립하지 못하면 이는 퇴직연금부채로 재무제표에 기록된다.

이미 해외에선 제너럴일렉트릭(GE)이 퇴직연금부채 부담을 못 이기고 DB형에서 근로자가 퇴직연금 운용을 책임지는 DC형으로 작년 10월 전환했다. DC형에선 회사가 매년 연봉의 12분의 1만큼을 근로자 계정에 납입하기만 하면 된다.

이미 기업들 재무제표에는 DB형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과 낮은 적립비율이 부담이 되고 있다. 일단 수익률이 높지 않으니 적립해놓아야 하는 돈보다 실제 적립된 돈이 못 미친다. 게다가 자금 부담 때문에 제때 적립해놓지 않은 경우까지 많아서 근로자들의 노후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이처럼 기업이 퇴직금을 마련해놓아야 할 돈보다 실제 마련된 돈이 없는 경우는 퇴직연금부채인식액으로 잡힌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말 상장 기업 1386곳의 퇴직연금부채인식액이 13조원에 달했다. 확정급여채무(기업이 퇴직급여로 줘야 하는 돈)는 총 72조원이나 되는데 사외에 실제 적립된 자산은 59조원이었기 때문이다. 2018년 실질임금 상승률은 4.3%인데 DB형 적립금 수익률은 1.4%에 불과해 생긴 결과다.

특히 저신용등급 기업과 공기업들의 확정급여부채가 큰 것으로 나왔다. 금융감독원 기업공시사이트에 따르면 2019년 별도재무제표 기준 확정급여부채가 대한항공은 1조5728억원, 아시아나항공은 4366억원이었다. 그 외에도 한국전력은 9546억원, 한국항공우주는 4026억원으로 나왔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퇴직급여부채는 해당 기업만의 문제를 넘어 상장 기업의 경우 주주 부담, 공기업 부채의 경우 사회 전체 부담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GM 자회사인 델파이가 퇴직연금 재정 악화로 파산한 것처럼 막대한 퇴직연금부채는 향후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자금 조달 문제로 이어져 기업 존속을 어렵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제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