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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서울 말고] 내 안전을 믿어도 될까 / 권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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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권영란 ㅣ <지역쓰담> 대표

“… 그들은 그날 새벽 당신의 목숨을 살려냈다. 우리는 진주시 내동면 삼계리 양옥마을 25가구 모두에게 생명을 빚졌다.” 사회관계망에 진주시민 백승대씨가 올린 글이다. 맨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자 자책 반, 분노 반의 감정들이 밀려왔다. 백씨는 글과 함께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 게시된 ‘진주 남강댐 방류로 인한 피해보상과 이주대책 요청’이라는 제목의 청원서를 공유했다. 지난 8월7일과 8일에 들이닥친 폭우에 남강댐 방류로 침수를 당한 피해자 손녀가 올린 글이었다.

‘남강댐 방류 피해’는 같은 날 일어난 섬진강 홍수 범람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언론에서 섬진강 홍수 범람으로 하동 화개, 구례, 곡성에 카메라를 들이댈 때 진주시 내동면 양옥마을을 덮친 물길은 사천시 축동면과 곤양면을 휩쓸고, 사천만과 남해 강진만을 덮쳤다. 대부분 70~80대 고령자인 제수문 아래 양옥마을 주민들은 물이 차오르는 집을 뒤로하고 서둘러 대피를 해야 했고, 좁은 임시대피소에서 쪽잠을 자야 했다. 생태보고로 알려진 사천만은 누렇게 토사로 덮였다. 한꺼번에 쏟아진 민물 때문에 염도가 낮아진 사천만, 남해 강진만 일대 굴·바지락은 집단 폐사하고 가두리 양식어장 물고기들도 떼죽음했다.

이들 지역은 왜 침수됐을까. 댐을 눈앞에 두고 말이다. 8월8일 남강댐 관리단은 저수량 조절을 위해 오전 11시께 남강 본류 585톤 방류, 사천만으로 이어지는 제수문 5000톤 이상 방류를 했다. 십분의 일 정도 되는 본류 방류에도 진주 시내 남강 수변구역은 대부분 침수됐었다. 더 많은 방류를 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피해 사정을 듣고 누군가가 말했다. “시내 사람들 살리려고 그리로 돌린 거네요.” 맞는 말이다. 피해지역 주민들은 한국수자원공사와 남강댐 관리단이 지금까지 수차례 피해에도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했고, 이번 침수 피해도 ‘남강댐 방류량 조절 문제’라고 주장했다.

남강댐은 1969년 10월에 준공한 다목적댐이다. 식수와 농업·공업용수, 전기 등 다양하게 쓰이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은 홍수 예방이다. 저수량이 적고 침수 피해도 잦아 1999년 보강댐을 건설했다. 남강댐 본류 아래는 대단위 주거지역이 자리 잡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형성된 신안·평거지역은 진주 시내에서 학군이 좋은 곳으로 꼽히는데다 남강 전망이 좋아선지 만만찮은 가격대에도 선호도가 높다. 대단위 주거지역은 남강을 따라 이어져 진주성과 진주 도심에 닿아 있다. 진주 아래로는 의령군과 함안군이 있다. 남강 물길은 이 지역을 거쳐 창녕 앞 낙동강과 합수한다.

얼핏 살펴봐도 남강댐은 인구 35만명의 진주를 중심으로 주변 의령·함안 지역의 안전을 맡고 있다. 근데 말이다. 진주시처럼 댐 밑에 대단위 주거지역이 형성된 곳은 드물다고 한다. 어느 나라에도 이런 사례가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수년 전에 댐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궁금해서 물으니, “남강댐은 정말 안전하다. 아주 튼튼하고 관리도 잘되고 있다. 우리 집도 댐 바로 밑 판문동에 있다”고 대답했다. 그저 안심시키는 말일 뿐 딱히 납득할 만한 근거는 없었다.

청원서는 9월24일 434명 동의로 종료됐다. 세상의 수많은 일들 사이로 묻혔다. 다행히도 현재 환경부가 남강댐을 비롯해 섬진강댐 등 몇몇 댐을 대상으로 운영의 적정성을 검증하는 조사 작업을 하고 있다. ‘남강댐 방류 피해’가 제대로 규명되기를 바란다. 향후 대책 마련도 절실하다.

더 소중하고 덜 소중한 생존은 없다. 재난에도 크고 작음이란 없다. 공평하게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남강댐 코앞에 사는 나는 종종 댐 방류 안내방송을 듣는다. 내 안전이 누군가의 불행으로 보장받은 거라면, 국가가 생각 없이 선별적 안전을 휘두른다면…. 과연 내 안전을 믿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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