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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北사과에도 의문점 여전…진상규명 없인 '신뢰프로세스' 답보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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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해명에도 석연찮은 미스터리

군·경찰 '월북시도' 판단에 북, 월북관련 언급 아예 없어

북 "80m까지 접근해 신분 요구"…軍관계자 "의사소통 불가능"

북 "정장의 결심 끝에 사격"…군 "일선 지휘관 결정 말 안돼"

이데일리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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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다슬 김관용 기자] 북한이 서해 상에서 실종된 공무원을 사살한 사실을 확인하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측의 사과를 전달했지만 여전히 의문점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북한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과를 전하며 “북남 사이의 신뢰와 존중의 관계가 허물어지지 않도록 하자”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신뢰의 전제가 될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상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프로세스 역시 답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①‘자진월북’이냐 ‘사고’냐

군과 경찰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47)씨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것에 대해 북한 통신 신호를 감청한 첩보 등을 근거로 월북 시도를 했다고 판단했다.

선미에서 신발 등이 발견되고 구명조끼를 차고 나건 것으로 보아 이씨가 자발적으로 배를 떠났다는 것이다. 이씨의 경제상황 등을 바탕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도 나온다.

그러나 자녀가 두 명이고 공무원 직업을 가진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 갑자기 월북 시도를 했다는 것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 북한은 25일 보낸 통지문에서 이씨의 월북 시도 여부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북한은 이씨에 신분 확인을 요구했으나 그가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는 계속 답변을 하지 않았다”며 북한군의 단속명령에 불응했다고 밝혔다.

해경은 이씨가 타고 있었던 행적을 수색하고 있다. 그러나 실종 전 타고 있던 선박의 폐쇄회로(CC) TV는 고장 나 있고, 휴대전화나 유서 등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수사가 진척되지 않자, 군은 이례적으로 첩보자산을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②80m 떨어져서 신분확인?

북한이 통일전선부 명의로 사건 경과를 설명한 내용 중에서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우선 해상 80m 거리에서 의사소통할 수 있는지 여부다. 북측은 “부유물을 타고 불법 침입한 자에게 80m까지 접근해 신분 확인을 요구했으나 처음에는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는 계속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군 관계자들은 80m나 되는 거리에서 바다에 떠 있는 실종자와 선박 탑승자 간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선박 자체의 소음과 해상에서의 소리 전달력 등을 감안하면 소리를 질러도 듣기 어려울 정도라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군은 당시 이씨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고 했다. 21일 오전 실종돼 22일 오후 3시 30분께 북측 해안에서 발견됐다면 힘에 부쳐 소리조차 내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다.

③구명조끼 입었는데 혈흔만 있었다?

특히 북측은 “사격 후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없어 10여m까지 접근하여 확인 수색하였으나 정체불명의 침입자는 부유물 위에 없었으며 많은 양의 혈흔이 확인됐다”고 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던 해당 실종자가 총격을 받은 뒤 혈흔만 남기고 물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인데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그러면서 북측은 “우리 군인들은 불법 침입자가 사살된 것으로 판단했고, 침입자가 타고 있던 부유물은 국가비상방역규정에 따라 해상 현지에서 소각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시신 훼손 부분을 사실상 부인한 것이다.

전날 우리 군은 “북한군 단속정이 상부 지시로 실종자에게 사격을 가했다”며 “방독면과 방호복을 착용한 북한군이 시신에 접근해 기름을 붓고 불태운 정황이 포착됐다”고 설명했다.

④“정장의 결심”vs“북 상부지도층 결정”

부유물에 의지한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한다는 결정을 누가 내렸는지 역시 의문이다. 북한은 통지문에서 “정장의 결심 끝에 해상경계근무 규정이 승인한 행동준칙에 따라 10여발의 총탄을 불법침입자를 향해 사격했다”고 밝혔다. 경비선 일선 지휘관의 판단에 따른 것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군·북한 소식통들은 남측 민간인을 사살한다는 결정을 일선 지휘관이 단독으로 내렸을 리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북한군이 이씨를 발견한 뒤 사살하기까지 적어도 6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렸던 것은 상부 지도층까지 보고하고 결정을 하달받는 절차를 걸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군 당국은 이번 사건에 대해 북한이 9·19군사합의를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9·19 군사합의는 포격 금지를 담았을 뿐, 소화기 규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세부적인 규정 위반은 아니더라도 9·19 군사합의 정신을 위반했다는 비판은 나온다. 전시상황에서도 민간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제네바 협약 위반이기도 하다.

북한은 “정체불명의 대상이 도주할 듯한 상황이 조성돼” 사격했다면서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과를 했다고 밝혔다

⑤군, 이씨 사살 막을 수 없었나

이씨의 실종 사실이 신고된 후 우리 정부의 대응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첩보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전날 오후부터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남북간 핫라인이 단절됐다고 해도 공용 주파수를 통해 모든 선박이 교신할 수 있는 국제상선망으로 북측에 남측 인원임을 알릴 수도 있었다. 게다가 사건이 발생한 지역은 군사적 긴장도가 높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이다. ‘특이 동향’에 대해 의심을 하고 확인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북한 측 해역에서 발생한 사안이기 때문에 군사작전을 하기 어려웠고, 당시에는 해상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다. 관련 첩보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역추적한 결과 A씨가 특정된 것으로, 당시에는 판단하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특히 군 관계자는 “우리 측 첩보 자산이 드러날까 봐 염려된 측면도 있었다”면서 “우리가 바로 (첩보 내용을) 활용하면 앞으로 첩보를 얻지 못한다. 과거 전사를 보면 피해를 감수하고도 첩보 자산을 보호한 사례가 있다”고 해명했다.

⑥文대통령, NSC 대신 아카펠라 공연 관람

문재인 대통령의 행적에도 안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씨가 피살된 이틀 후인 24일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문 대통령이 아닌 서훈 안보실장이 주재했다. 청와대에서 NSC 회의가 개최되고 있는 시각 문 대통령은 ‘디지털 뉴딜 문화콘텐츠 산업전략 보고회’에 참석해 아카펠라 공연 등을 관람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은 분노와 슬픔에 빠졌는데 한가롭게 아카펠라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 과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맞는지 기가 차고 말문이 막힌다”고 비판했다.

이씨가 피살된 직후, 23일 새벽 1시 30분께 청와대가 소집한 관계장관회의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통령으로의 보고는 23일 오전 8시 이뤄졌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우리 국민의 피살 사실을 대통령에게 즉각 알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 “시간상으로 새벽이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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