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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사설]‘잡아보라’며 다시 문 연 디지털교도소 저리 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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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성범죄자 등의 신상정보를 임의로 공개하는 인터넷사이트 ‘디지털교도소’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전면 접속 차단 조치 이틀 만인 지난 26일 새로운 주소로 재오픈했다. 새 사이트는 디자인도 같고 신상정보도 그대로 옮겨 게시해 디지털교도소의 복사판이나 다름없다. 디지털교도소 2기 운영자로 추정되는 인물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새 사이트 주소를 공지하며 이 사이트의 접속 차단 시 우회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렸다. 게릴라식으로 사이버 거점을 계속 옮겨다니겠다는 뜻을 비치며 느슨한 법망을 비웃는 형국이다.

디지털교도소는 올 상반기 성범죄와 살인, 아동학대 등 악성 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해 사회적 심판을 받게 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만들어졌다. 악성범죄자들에게 관대한 사법부 판단을 믿을 수 없으니, 국민 눈높이에 합당한 사회적 단죄를 직접 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확실한 물증이나 명확한 기준 없는 ‘사적 제재’는 우려했던 대로 부작용이 속출했다. 한 교수가 ‘성착취물을 구하려 했다’는 게시물은 포토샵 조작임이 밝혀졌고, 동명이인인 무고한 이들이 성범죄 가해자 누명을 쓰기도 했다. 방심위는 표현의 자유를 함께 고려해 지난 14일 불법성 있는 정보 17건만 접속을 차단하는 결정을 내렸지만, 운영진이 시정 요구를 이행하지 않고 부정적 여론이 비등하자 지난 24일 전체 사이트 접속 차단을 결정했다.

이번 사이트 재오픈에서 보듯, 접속 차단만으로는 제2, 제3의 사이트 개설을 막는 데엔 한계가 있다. 디지털교도소의 존재 이유 자체를 없애는 것만이 근본 해법이다. 최근 양형위원회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상습 제작범에겐 최대 29년3개월까지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양형 기준을 높인 결정은 그 출발점이다. 인권침해 시비가 계속되는 디지털교도소는 엄단하고 실효적인 폐쇄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 나아가 법치국가에서 ‘사이버감옥’이라는 극단적 행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악성 범죄를 강력히 단죄하는 사법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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