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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가 보내는 적색 경고, ‘일산화탄소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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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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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윌슨산 천문대 근처에서 소방대원들이 자욱한 연기를 뚫고 산불 진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번 대형 산불로 생긴 연기에 포함된 일산화탄소는 미국 동부와 캐나다까지 확산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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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서부 산불이 뿜어낸 일산화탄소
북미 대륙 대기 중 농도 10배 높여
원인은 폭염 유발하는 기후변화

역대 가장 뜨거운 8월, 5년 새 집중
우연 아닌 큰 산불, 방지 노력 절실

국민 대부분이 난방 연료를 연탄에 의존하던 시절에는 겨울철마다 연탄가스 중독 사고가 잇따랐다. 원인은 아궁이에서 새어 나온 연탄가스 속 일산화탄소 때문이었다. 일산화탄소는 냄새나 색깔이 없어 사람이 실제 쓰러지기 전까진 누출 사실을 알아채기가 어려웠다. 일산화탄소를 들이마시면 두통이나 구역질, 호흡 곤란이 생기고 심장이나 뇌도 치명상을 입는다. 이런 일은 산소를 온몸에 실어 날라야 할 혈액 속 성분인 ‘헤모글로빈’이 제 역할을 못해서 생긴다. 헤모글로빈은 산소보다 일산화탄소와 250배 더 잘 결합하기 때문에 일산화탄소가 몸에 들어오게 되면 산소 운반이라는 본래 임무는 내팽개치는 것이다.

■ 북미의 ‘일산화탄소 구름’

그런데 최근 난데없이 북미 대륙의 대기에서 일산화탄소가 평소보다 10배나 늘어나는 일이 발생했다. 이달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대기 속에 포함된 기체의 종류를 알아낼 수 있는 ‘아쿠아 위성’을 동원해 촬영한 사진을 살펴보면 고농도 일산화탄소의 증가세와 확산 속도는 충격적이다.

아쿠아 위성의 사진은 대기 중 일산화탄소 수치가 350ppbv(parts per billion by volume·전체 부피의 10억분의 1)가 넘는 지역을 빨간색으로 표시한다. 지난 6~8일의 3일간 평균치에서 이런 곳은 미국 서부와 중부 일부에 국한됐다.

지난 12~14일 상황이 확 달라졌다. 빨간색 지역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광범위하게 확산했다. 하나는 미국 서부와 중부, 동부를 길고 두껍게 관통하는 띠 형태로, 다른 하나는 캐나다 남서부와 태평양 연안 하늘을 뒤덮는 회오리 같은 모습으로 발달했다.

북미 대기의 일반적인 일산화탄소 농도는 위성 사진에서 녹색과 노란색 지역으로 표시된 30~50ppbv에 그친다. 겨우 일주일 새 평소보다 많게는 10배 이상의 일산화탄소가 북미 대륙을 덮친 것이다. 일산화탄소는 약 한 달간 대기에 남아 있을 것으로 NASA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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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불이 만들고 제트기류가 배송

이번 일로 당장 미국과 캐나다 길거리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을 걱정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일산화탄소가 고농도로 녹아든 대기는 고도 5㎞에서 관측됐기 때문이다. 백두산의 2배에 이르는 높이로, 사람이나 동물이 들이마시는 공기와는 한참 떨어져 있다. 하지만 NASA는 “일산화탄소가 강한 바람을 타고 공기 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산불 지역에선 이미 초미세먼지 등으로 시민들이 마스크나 심지어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는데, 일산화탄소 때문에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일산화탄소는 어디서 온 걸까. 바로 캘리포니아주, 오리건주, 워싱턴주에 걸친 미국 서부 산불 현장이다. 지난달 중순부터 본격화된 산불은 이달 중순까지 약 2만㎢를 태웠다. 남한 면적의 5분의 1이 잿더미가 되면서 엄청난 양의 일산화탄소가 뿜어져 나온 것이다.

일산화탄소가 대기권에서 광범위하게 퍼진 이유는 산불의 뜨거운 열기, 그리고 제트기류 때문이다. 산림이 활활 타며 생긴 열기가 덥고 가벼운 공기를 만들면서 여객기가 다니는 고도 근처까지 일산화탄소를 밀어 올렸다. 이렇게 올라온 일산화탄소는 동쪽을 향해 움직이는 시속 100~200㎞의 제트기류를 타고, 일주일 남짓 만에 북미 대륙에 넓게 확산한 것으로 NASA는 보고 있다.

■ 재앙 탈출구도 ‘막막’

문제는 미국 서부의 산불과 일산화탄소 확산이 앞으로도 꾸준히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번 산불은 지구촌의 구조적인 문제, 즉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했다는 게 과학계의 분석이다. 기후변화는 폭염을 유발하고, 폭염은 산림과 대지를 바짝 말린 장작처럼 만든다는 것이다.

우울한 전망은 구체적인 숫자로 증명된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지구의 평균 기온은 20세기 평균(15.6도)보다 0.94도가 높아 2016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뜨거운 8월을 기록했다.

날이 갈수록 더워지는 여름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1880년 기온 측정이 시작된 이후 ‘가장 뜨거웠던 8월 기온’ 기록 10개가 모두 1998년 이후에 세워졌고, 상위 5개만 추리면 모두 2015년 이후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캘리포니아에서 1932년 이후 집계된 대형 산불 상위 20개 가운데 17개가 2000년 이후에 빼곡히 발생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가속화되는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 앞에서 한국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5위, 전 세계 11위이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한국은 국익 논리 때문에 한국전력 등이 추진하는 해외 석탄발전소 건설을 계속 허용하고 있다”며 “환경 문제 대응을 경제적 효용성을 중심에 둔 ‘돈 계산’이 아니라 생존이나 지속 가능성의 관점으로 보는 시각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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