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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친애하는, 인민들의 문학 생활’ 펴낸 오창은 교수 “북 체제선전 도구 ‘선입견’ 넘어 김정은 시대 ‘인민들의 삶’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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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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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문학 평론집 <친애하는, 인민들의 문학 생활>을 펴낸 오창은 중앙대 교수가 지난 21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연구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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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생활·현실 표현에 주목
작품의 이면 해석 ‘징후적 독해’

김정은 체제선 국가 통제에 ‘틈’
가부장 질서에 대항하는 여성 등
자유롭고 주체적인 ‘새 흐름’도

오늘의 북한 소설엔 어떤 이야기가 담겼을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체제에 대한 찬양 일색일까. 문학평론가인 오창은 중앙대 교수가 최근 펴낸 <친애하는, 인민들의 문학 생활>(서해문집)은 이런 선입견을 깨뜨리는 책이다. 2010년대에 발표된 36편의 북한 최신 소설을 분석한 평론집으로, 남한에서 처음 출간된 ‘동시대 북한문학 평론집’이라 할 만하다.

지난 21일 찾은 서울 흑석동 중앙대 오 교수의 연구실에는 수십년 전 발간된 오래된 소설책부터 최신의 문학잡지까지 북한 서적이 책장에 가득 꽂혀 있었다. 오 교수는 석사과정 때 중국 연변대로 교환 연구생을 갔다가 북한 문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현재 소장한 북한 서적들은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득한 것이지만, 1997년 교환 연구생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에는 이 ‘불온 서적’들 때문에 공안 사건에 휘말릴 뻔했다고 한다. “인천항으로 귀국했는데, 세관에 걸려서 바로 검찰에 취조를 당했어요. 학술 목적이라는 게 확인돼서 큰 일은 없었지만, 논문 자료로 쓸 책들을 전부 뺏겼죠. 정말 역사적으로 귀중한 자료라고 나름 설득도 해봤는데, 지금 책이 중요하냐며 황당해 하더라고요.(웃음)”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평화문제연구소에 기증하는 방법을 찾으면서 가져온 자료들이 전부 소각 처리되는 일은 막았지만, 자료를 잃은 그는 결국 논문 주제를 바꿔야 했다.

이후에도 북한 문학에 대한 연구자로서의 관심은 계속됐다. 1950~1960년대 북한 문학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고, 2004년부터 ‘남북문학예술연구회’ 창립 회원으로 현재까지 세미나를 이어오면서 관심은 자연스레 ‘동시대 북한문학’으로 확장했다. 정권에 따라, 남북관계 상황에 따라 자료 접근 등 북한 문학 연구에도 부침이 있었지만 꾸준히 평론 작업을 이어 왔다.

책에는 2010년 이후 북한 문예지 ‘조선문학’에 발표된 소설 36편에 대한 평론이 실렸다. 이 소설 가운데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에 발표된 말 그대로 ‘따끈따끈’한 최신작도 있다. 2018년과 2019년 방학 때마다 연변대 도서관에서 북한 신문과 잡지를 샅샅이 찾은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들 소설은 물론 검열을 받아 발표된 북한의 ‘공식 문학’이자 ‘당의 문학’이다. 수령에 대한 찬양, 체제에 대한 충성심도 여지없이 담겼다. 북한 소설에서 이런 면만 본다면 그 ‘문학적 가치’에 대해선 고개를 내저을 만하다. 그러나 오 교수는 북한 문학을 읽는 방법론으로 ‘비체제 민중주의적 방법론’을 제시하며 작품의 이면을 해석하는 ‘징후적 독해’를 시도한다. “남과 북의 문학을 정치체제를 전제하고 볼 것이 아니라, 민중의 ‘생활’과 ‘현실’에 주목해 해석해내자”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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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관습에 저항한 북한 문학의 새로운 흐름도 읽어낸다. “최근 북한 여성작가 소설을 보면 가부장적 질서에 대항하는 동시대 여성의 욕망이 드러납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흐름인데, 렴예성의 <사랑하노라>, 김옥순의 <동창생> 같은 2018년 소설이 그렇습니다. 표현이나 감성이 과거보다 훨씬 자유롭고 주체적입니다.”

그는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문학의 변화 양상에도 주목했다. “1950년대 전후 한국 문학이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였다면 이에 비해 북한 문학은 상당히 낙관적이고 밝았어요. 전후 복구에 성공했다는 자신감이 반영돼 있었습니다. 이후 김일성 유일사상 체제가 확립되며 이 경향이 1970년대 이후 문학에도 위계적으로 반영됐죠. 최근엔 과거에 비해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이 많아졌습니다.” 북한 문단에서도 최고 작품으로 꼽히는 김해룡의 <서른두 송이의 해당화>(2016)는 ‘혁명적 낙관주의’를 깬 비극적 서사가 눈에 띄고, 리준호의 <나의 소대원들>(2016)은 북한 문학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비주류 하층 노동자에 대한 개성 넘치는 성격 묘사를 발견할 수 있다.

오 교수는 “연구자들끼리 ‘김정은에게 문학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김일성, 김정일 체제에서 문학은 곧 ‘국가의 언어’였기 때문에 문학적 표현도 엄격하게 통제됐지만, 이 젊은 지도자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기에 역설적으로 더 많은 자율성이 생겼다는 얘기다.

오 교수는 “물론 당에 의한 엄격한 통제라는 주류적 흐름이 바뀐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씩 틈이 열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국내에 출간된 익명의 북한 작가 ‘반디’의 <고발>은 북한 당국의 검열 없이 발표된 유일한 북한 소설이었다. 그만큼 북한에서 ‘반체제 지하문학’이 존재하기 어렵지만, 오 교수는 이른바 ‘누설의 서사’를 통해 북한 문학에서 동시대 북한 민중의 현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작가가 의도치 않아도 서사의 전개 과정에서 ‘은폐된 진실’이 드러나기도 하고, 숨겨진 사건의 의미를 도출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2000년대 북한 문학에선 그간 언급이 금기시됐던 ‘고난의 행군’ 당시 생활상에 대한 묘사가 조금씩 나타난다.

오 교수는 책에서 “동구권 사회주의 몰락 이후 외부와 차단된 내부의 문학으로 자신의 장벽을 견고하게 구축”한 북한 문학의 역사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특수성을 이해하지 않고 남한의 관점에서 북한 문학을 ‘보편적 문학’으로 통합하려고만 한다면 남북한 문학의 관계 맺기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우리가 흔히 북한을 이해하던 방식인 ‘북한 정권’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문학을 통해 ‘북한 인민의 삶’을 이해하자는 것이 이 책이 제안하는 내용입니다. 이 책이 우리가 북한을 이해하는 데 있어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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