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사과가 비교적 신속하게 나온 것은 이번 사건이 국제 문제로 비화했을 때 감수해야 할 압박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게 마치 현 정부 남북관계 개선 노력의 성과인 양 의기양양해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고 한편으로 참담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잘못을 따지는 대신 '빨리 사과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꼴이다. 사과는 사과일 뿐 사건 규명과 책임 추궁은 별도로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북한이 통지문에서 밝힌 사건 경위는 우리 정부 발표와 여러 지점에서 불일치한다. 저들은 피살자가 도망가려 해 총을 쏘았으며 시신이 아니라 부유물을 불태웠다고 주장한다. 김정은 등 상부의 지시는 없었다고 한다. 통지문에는 피살자가 월북을 희망했다는 표현도 들어 있지 않다. 낱낱이 밝혀져야 할 의문들이다. 북은 공동조사 제안에는 반응하지 않으면서 피살자 시신을 수색하는 우리 군이 북측 영해를 침범하고 있다며 경고했다. 진상 규명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이대로 덮고 넘어가면 북한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결과가 된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시스템 비작동에 대한 실체 규명이다. 야당은 군이 청와대에 총살 및 시신 훼손을 보고한 22일 밤 10시 30분부터 대통령이 첫 대면 보고를 받은 23일 오전 8시 30분까지 대통령 행적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전에 공무원 생존이 확인됐던 6시간 동안 왜 아무런 구조 노력이 이뤄지지 않았는지도 설명돼야 한다. 야당이 아니라 국민이 진실을 원한다. 국가가 작동하지 않은 이 중대한 사태를 김정은 사과 한마디에 어물쩍 덮어버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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