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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윤창호 이름 부끄럽지 않으려면[현장에서/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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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5일 인천 경인고속도로에서 음주운전 차량이 신호 대기중이던 차량을 들이받았다. 인천=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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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채은 사회부 기자


불과 2년 전, 그때도 추석 연휴였다.

2018년 9월 25일 오전 2시 25분경 부산 해운대구에서 만취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인도를 향해 돌진했다. 보행자 2명을 친 차량은 인근 담장을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당시 뇌사상태에 빠졌던 22세 청년은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그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꽃다운 목숨을 잃은 젊은이가 윤창호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그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윤창호법’이란 음주운전 처벌 강화법(개정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세상에 남겼기 때문이다. “윤창호법 적용 사고 1호” “윤창호법 적용 첫 구속” 등 최근에도 이름이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떠난 한가위를 다시 맞는 지금, 몇몇 사례만 보자면 우린 여전히 윤창호에게 고개를 들기 어렵다.

추석을 며칠 앞둔 25일 인천에선 술 취한 운전자 때문에 결혼을 하루 앞둔 예비신부가 다쳤다. 오후 9시경 경인고속도로 인천 방향 부평나들목 인근에서 한 40대 여성이 몰던 승용차가 신호 대기 중이던 차들을 들이받았다. 사고를 낸 여성은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취소 수치인 0.08%를 넘었다고 한다. 이 사고로 앞차를 운전하던 30대 여성은 얼굴에 큰 부상을 입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현장에서 ‘내일이 결혼식인데 어떡하느냐’며 울먹였다”고 전했다.

27일엔 윤창호가 세상을 떠난 부산에서 또 음주운전 사고가 벌어졌다. 서면 인근 포장마차 거리에서 오전 4시 반경 20대 운전자가 행인 2명을 친 뒤 도주하다가 포장마차 테이블에 앉아있던 시민 10명을 추가로 덮쳤다. 이 사고로 총 12명이 경상을 입고 4명은 병원 치료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는 이후에도 도망치려 했지만 시민 50여 명이 차를 둘러싸고 막아 현장에서 붙잡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안타깝게도 추석 같은 명절이 다가오면 운전자들의 경각심은 무척 해이해진다. 경찰청의 최근 5년간 추석 연휴 교통사고 현황을 보면, 연휴 시작 전날 교통사고 사상자가 가장 많다. 음주운전 사고도 이날이 가장 잦았다. 경찰 측은 “이번 추석 연휴 때도 암행 순찰차와 경찰 헬기, 드론 등을 총동원해 음주운전 단속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문득문득 잊고 사는 사실이 있다. 윤창호는 법으로 이름을 남겼지만, 본인은 그 법의 적용을 받지 못했다. 윤창호 사건의 가해자는 지난해 2월 1심 재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이렇게 말했다.

“기록을 통해 본 고인은 정의로운 사람, 꿈 많고 성실한 아들이자 친구이자 때로는 스승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인이 꿈꾼 세상이 이름으로나마 남아 꼭 이뤄지길 바랍니다.”

우리가 과연 그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 있는지 되돌아볼 때다.

전채은 사회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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