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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태평로] ‘메르스식 방역’ 한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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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당 확진자 수 대만의 20배

깜깜이 환자 4명 중 1명 한 달째

포괄적 코로나 대응 방식 필요

정치 비키고 과학이 이끌어야

조선일보

박종세 부국장 겸 경제산업에디터


K방역이 기로에 섰다. 정부의 방역 강화 조치에도 좀처럼 확진자가 줄어들지 않고, 경로를 알 수 없는 깜깜이 확진자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8월 확진자 급증을 이유로 실시된 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는 확진자 수를 22일 만에 두 자릿수로 떨어뜨렸지만, 불과 3일을 넘기지 못하고 세 자리로 돌아갔다. 주말 검사자 수가 줄어들어 잠시 두 자릿수로 떨어졌지만, 추석 연휴가 끝난 뒤 확진자가 얼마나 늘지 불안한 상황이다.

확진자 4명 중 1명의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상황은 한 달째 지속되고 있다. 이들을 감염시킨 잠재 감염원은 이 시간에도 지역사회 곳곳을 돌아다니며 코로나를 퍼뜨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미 지역감염·n차감염·집단감염 등 지역사회 전파(community spread)의 모든 조건이 충족되고 있다. 확진자 수를 떨어뜨리기 위해 방역 단계를 다시 높이는 것은 이미 벼랑 끝에 서있는 자영업자들의 등을 떠미는 것일 뿐, 확진자 수를 의도한 만큼 낮출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우리의 상황은 대만과 비교해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인구 2500만명인 대만의 누적 확진자는 27일 현재 510명이다. 사망자 수는 단 7명으로 지난 5월 12일 이후 한 명도 늘지 않았다. 100만명당 감염자 수로 보면 우리나라가 대만보다 20배가량 많다. 우리가 하루 100명이 넘는 확진자를 줄이려고 씨름할 때, 대만은 요즘도 하루 1~2명씩 나오는 환자를 처리하고 있을 뿐이다. 초기 단호한 국경 봉쇄로 외국으로부터 감염원 유입을 막은 덕분이다. 환자를 확인하고 접촉자를 추적해 동선을 공개하며 표적을 봉쇄하는 식의 현재 우리의 방역시스템은 대만 같은 환경에서 더 잘 작동할 수 있다. 매일 세 자릿수 감염자 발생이 일상화했고, 깜깜이 지역 전파가 확산하고 있는 감염 현실을 감안하면 방역 체계의 전환이 불가피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치명률이 30%에 이르는 메르스와, 치명률은 1.6%에 불과하지만 비말·에어로졸로 쉽게 퍼지는 코로나의 특성을 감안해 방역 대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무증상 환자의 감염원·발생 경로·역학 특성을 규명하기 위해 대규모 샘플 조사를 실시하고, 한계에 다다른 음압 병실과 중환자실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중증 환자 위주의 관리로 전환해야 한다고 한다. 일본과 대만에서 실시하고 있는 확진자의 자가 격리 허용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세계는 근래 경험하지 못한 감염병의 습격에 당황하고 있다. 어느 국가도 코로나 사태에 대해선 결코 자신할 수 없고, 아슬아슬 살얼음판을 걸으며 어둠 속을 더듬어 짚어가고 있을 뿐이다. 집단면역 실험으로 인한 초기 고령 사망자 급증으로 ‘왕따 국가’로 조롱받던 스웨덴이 최근 확진자와 사망자 급감으로 재조명을 받는가 하면, 대만·베트남 등 방역 최우등 국가조차도 제2차 팬데믹 확산에 대한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변이와 진행에 맞춰 과학이 이끄는 처방을 끊임없이 따르는 나라가 아마도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K방역이 코로나 현실에 맞게 업그레이드하려면 정치가 비켜나야 한다. 방역을 정치에 이용해 국민을 가르고 희생양을 만들면서 K방역의 순수성은 이미 많이 훼손됐다. K방역의 골수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호응과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일 뿐이다. 이걸 훼손하면 K방역은 무너진다. 지지율과 득표라는 정치적 계산을 빼야 한다. 코로나 확산을 막고 지속 가능한 경제 생활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전문가들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처방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 방역에서 계속 정치의 냄새가 난다면, 지금껏 방역 당국을 믿고 따라왔던 국민들이 등을 돌릴 것이고, 그 순간 K방역의 신화도 사라질 것이다.

[박종세 부국장 겸 경제산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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