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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우리에겐 왜 긴즈버그가 없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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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국 연방대법관 긴즈버그가 타계하자 우리나라의 언론도 일제히 그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그에게 붙여진 ‘진보의 아이콘’이라는 칭호에도 불구하고 보수 성향 언론사들도 관련 기사를 크게 내는 게 좀 신기해 보였는데, 어떤 기사는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 모여든 추모객들의 사진을 실으면서 그 아래에 “우린 왜 이런 대법관이 없나”라고 썼다. 쓴웃음이 나온다.

경향신문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그 질문이 왜 우리에겐 대중의 열광을 받는 대법관이 없느냐는 것이라면, 그건 무의미하다. 판관은 본디 대중의 열광을 받는 자리가 아니고, 그런 열광이 판관으로서의 가치를 말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게 아니라, 여성과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변호사로서 싸우고 대법관으로 일하며 줄곧 그들 편에 섰던 사람, 그가 이끈 전선(戰線)이 넓고 그가 던진 메시지의 울림이 컸던 사람, 그런 긴즈버그가 왜 우리에겐 없는지 묻는 취지라면, 그 질문엔 답을 찾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 미국의 대법관이 우리나라 대법관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미 연방대법관 ‘자질’ 검증 필수
권력이 시험성적에서 나온다 믿는
한국 전문가 집단엔 ‘그것’이 있나
기득권·엘리트 의식 떨칠 용기를

미국의 판사는 젊은 나이에 관료로 직업적 경력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이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 그들은 대부분 변호사로 직업적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다. 소싯적에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걸 평생의 자랑거리로 삼는 맹꽁이 수재가 아닌 것이다. 또 그들은 어떤 경로로든 공중의 눈에 띈 사람들이다. 연방대법관으로 지명되면 상원 인준위는 후보자의 판결, 논문, 저서부터 모은다. 그것으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업적의 유무와 사법철학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대통령이 꼭 중립적인 사법철학의 인물을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하진 않는다. 그러나 연방대법관은 법조든, 학계든, 정계든 해당 분야에서 수월한 자질을 가지고 있음이 검증된 이들이다. 아직도 판사 노릇 오래 한 이른바 ‘서오남’들이 대법원 구성원의 주류인 우리와 다르다. 사회적 소수자를 배려하여 특수한 배경 출신을 연방대법관으로 뽑기도 하지만, 우리처럼 대법관 정원 13인을 3인 내지 5인씩으로 나누어 중부, 호남, 영남 지역 출신에 안배하는 따위의 관행도 없다.

긴즈버그는 변호사로서 연방대법원에서의 구술변론 등으로 실력을 증명하였다. 대법관이 된 더굿 마셜, 에이브 포터스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법무부는 그 과정에서 이들의 자질과 철학을 파악하고, 대통령의 법률참모로서 대법관 선임 과정에 관여한다. 법원에서의 내부 승진이 관례인 우리 풍토에서 이런 능력이 대법관 인선의 고려사항일 리도 없다.

인물은 나오는 것이지만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 나라도 결국 자기에게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고 하지만, 훌륭한 대법관도 훌륭한 사회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최초로 여성을 연방대법관으로 임명한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이 아니다. 공화당 출신 레이건이 법무부와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샌드라 오코너를 대법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또한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이 판결을 내리면 일단 승복하고 비판을 해도 절제한다. 자기 진영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면 사법권 독립이 살아 있다고 추켜세우다가, 불리한 판결을 받으면 돌변하여 정권의 시녀라고 막말을 하는 행태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처럼 판결을 뒤집으려고 법률을 바꾸다 못해, 나중엔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을 무더기로 사임으로 내몬 역사도 없다. 긴즈버그가 공개적으로 사기꾼이라고 부른 트럼프 대통령마저 긴즈버그가 타계하자 그의 공헌을 기리는 성명을 내고 백악관과 연방정부 건물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이 대법관인 법원행정처장을 자기 공관으로 불러들이는 우리와 다르다. 언론도 사법을 존중한다. 우리나라의 언론처럼 자기 성향에 맞지 않는 판결을 내리면 대법원이 정권을 수호한다느니, 대통령에 아부한다느니 따위의 언사로 비난하지 않는다. 긴즈버그는 판결에 여론을 의식하느냐는 학생의 질문에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고 답했다. 긴즈버그는 남녀 임금차별 금지와 동성결혼 합법화를 다룬 사건의 판결을 주도했다. 그가 누구인지 몰랐던 것 같은 어느 누리꾼이 그런 업적을 알린 기사에 남긴 댓글은 이렇다. “이거, 좌빨이구먼.”

물론 긴즈버그 같은 대법관이 나오지 않는 것이 온전히 사회의 책임만은 아니다. 연대보다 경쟁에 친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능력의 차이에 따른 결과로 여기며 내 손의 권력이 시험성적에서 나온 것으로 믿는 전문가 집단에서, 기득권과 엘리트 의식을 떨치고 나설 용기 있는 위인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린 그렇지 못하다. 우리 사회가 긴즈버그를 가지지 못한 또 다른 이유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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