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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최유식의 온차이나]알리바바 창업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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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출신 크라치 미 국무차관

“BtoB 사업 컨셉 도둑질당했다” 폭로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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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해협에서는 지난주 한바탕 공중 활극이 벌어졌죠. 20대 전후의 중국 전투기와 폭격기, 대잠초계기가 평균 폭 180㎞의 대만해협 중간선을 수시로 넘나들었습니다. 대만 전투기들이 대응 출격하고, 대공 미사일을 정조준하는 등 상황이 험악했죠. 미국도 정찰기를 보내 중국 공군을 견제했습니다.

이번 무력 시위는 9월17일부터 2박3일간 대만을 방문한 키스 크라크(Keith Krach) 미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을 겨냥한 거죠. 지난달에도 알렉스 에이자 미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만을 찾았지만, 이번은 시위 강도가 차원이 달랐습니다. 미국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국무부의 차관이 단교 41년만에 처음으로 대만을 찾아왔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은 대만이 중국 남쪽에 진을 친다는 건 중국으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입니다. 중국판 ‘쿠바 미사일 위기’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되실 거예요.

◇대중 경제전쟁 선봉 맡은 폼페이오 장관 오른팔

작년 1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추천으로 공직에 들어선 크라크 차관은 트럼프 정부 대중 압박의 선봉장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반중 경제 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상, 화웨이 압박 등이 그의 주도로 실행되고 있죠. 공공연히 중국을 ‘불량배(bully)’라고 부릅니다. 전체주의 국가 중국이 반칙과 도둑질로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려 한다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그는 전통산업과 실리콘밸리 벤처 분야에서 모두 성공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죠. 1957년 생으로, 미 중동부 오하이호주의 한 소도시에서 철공소 집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직원이 가장 많았을 때가 5명이었다니 가내수공업인 셈인데, 주로 GM협력업체로부터 일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국산 부품이 밀려들면서 일감이 줄어 결국 문을 닫았다고 하죠.

“아버지가 가족처럼 여기던 5명의 직원을 내보내면서 괴로워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12살 때부터 용접일을 하며 아버지를 도왔다는 크라크 차관은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중국에 얽힌 그의 첫 경험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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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쑤전창(맨 오른쪽) 대만 행정원장을 예방한 키스 크라치(맨 왼쪽) 미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 /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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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 GM 부사장..2차례 벤처 통해 억만장자 대열 합류

이후 명문 퍼듀대 산업공학과에 진학했는데, GM은 대학 2학년 때부터 그에게 장학금을 주고 졸업 후 취업을 보장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경영학석사(MBA) 과정까지 마치고 1981년 GM에 합류했죠. 1984년엔 불과 26세의 나이에 GM 부사장이 돼 일본 파낙과 GM간 산업용 로봇 합작법인 설립 프로젝트를 맡습니다. GM 역사상 최연소 부사장이었죠.

GM에 남았어도 출세길이 열렸을텐데, 1987년 자기 사업을 하겠다며 실리콘밸리로 뛰어듭니다. 1년여 동안 한 벤처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1988년 기계공학 설계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벤처기업 라스나를 창업해 독립했죠. 1995년 이 회사를 5억 달러에 매각하면서 억만장자 대열에 오릅니다.

1996년에는 라스나 당시 함께 일한 6명의 팀원을 규합해 세계 최초 기업간 전자상거래(BtoB) 회사인 아리바(ARIBA)를 창업했습니다. 아리바는 닷컴 버블인 한창이던 1999년 나스닥에 상장했는데, 2000년 시가총액이 400억 달러까지 오릅니다. 2012년 독일 소프트웨어 기업 SAP에 43억 달러에 팔리면서 크라치는 다시 한번 돈방석 위에 올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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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입문 계기가 된 두번의 중국 체험

그가 공직에 입문한 계기로 중국을 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와 관련된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고 하죠.

크라크 차관은 올 7월30일 상원 통상과학운수위원회 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의 경제 전쟁을 직접 체험했죠. 실리콘밸리에 있을 때 지적재산권을 도둑질당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 최초 기업간 전자상거래 회사인 아리바를 운영할 때죠. 1990년대 후반으로 기억하는데, 본사(캘리포니아주 팔로 알토)로 중국 손님 몇 명이 찾아와 반갑게 맞은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의 사업 컨셉 중 하나를 그대로 베껴갔죠. 그게 바로 알리바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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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크라치 미 국무부 경제 담당 차관이 7월30일 상원 통상과학운수위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미 상원 통상과학운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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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엘리트사회의 반중 정서

실제로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馬雲)은 1996년부터 여러 차례 미국을 방문했고, 1999년에 알리바바를 창업했죠.

마윈 자신도 창업 동기에 대해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미국 방문 때 전자상거래가 활발한 것을 보고 거기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기업의 사업 컨셉을 통째로 베꼈다고 실토한 적은 없지요. 알리바바와 아리바, 참 비슷합니다.

알리바바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로 미국 나스닥 증시에도 상장돼 있죠. 그런 거대 기업 창업의 비밀이 미 국무차관의 청문회 발언으로 드러난 겁니다.

크라크 차관은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가난한 철공소 집안 아들로 아메리칸드림을 일군 뒤 활발하게 자선활동을 했죠. 다섯 아이의 아버지로서 화목한 가정도 일궜습니다.

그런 그가 중국을 고쳐놓겠다며 예순이 넘은 나이에 공직에 입문했어요. 미국 엘리트 계층의 중국에 대한 분노와 위협감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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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식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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