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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살 공무원 논란, 다시 남북 NLL 분쟁으로 옮겨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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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1953년 유엔군사령관이 첫 설정한 해양경계

20년간 이의제기 없던 북, 1973년부터 “NLL 무효”

“9.19 합의 후 남북 군사공동위 가동 안돼 생긴 일”

“우리 정부가 ‘공동수색’ 등 수용가능한 제안해야”

헤럴드경제

지난 27일 오후 서해 대연평도 해변에서 해병대원들이 야간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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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북한이 남측 공무원 이모 씨(47) 사살에 대해 사과한 지 이틀만인 27일 우리 정부의 수색활동에 대해 “영해 침범”이라고 규정함에 따라 잠잠했던 남북 간의 서해 NLL(북방한계선) 공방에 다시 불이 붙는 모습이다.

우리 군과 경찰의 수색인력이 우리 영해인 서해 NLL 이남 지역에서 수색활동을 벌였지만, 북측이 ‘영해 침범’이라고 주장한 것은 우리 측 NLL을 북측이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 선박이 NLL 이남에서 수색활동을 하더라도 북측 위주의 경계선을 침범해 결국 영해 침범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1953년 8월 30일 마크 클라크 주한 유엔군사령관이 처음 설정한 NLL을 남북 간의 해양경계선으로 본다. 이 선은 그해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이 육상경계선만 설정하고 해양경계선은 설정하지 않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그어진 것이다.

그 이후 북한은 NLL에 대해 20여년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1973년 10월 서해 5개 섬(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 주변이 북한 연해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NLL 무효론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1977년 8월 해상 군사경계선을 북측이 일방적으로 설정했고, 연평해전(1999년 6월) 직후인 1999년 9월에는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선포했다.

2000년 3월엔 NLL 대신 북측이 설정한 수로로 서해 5도를 통행하라는 취지에서 ‘서해 5개 섬 통항질서’를 발표했다. 현재 북측이 주장하는 ‘경비계선’은 2007년 설정한 것으로, 그 전 주장보다는 물러난 것이지만, 여전히 NLL보다 남쪽으로 설정해 갈등의 불씨를 남겨놓은 상태다.

남북은 지난 2018년 9월 19일 남북군사합의에서 향후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를 출범시켜 NLL 등 관련 문제들을 논의하기로 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 싶었다. 그러나 9.19 합의 이후 남북 군사관계에 별다른 진전이 없는 사이, 이번 피살 사건이 발생해 다시 9.19 합의 이전으로 회귀하는 양상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9.19 합의 이후 예정대로 남북 군사공동위가 가동돼 NLL 등의 현안을 다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논란”이라며 “과거의 소모적 논쟁이 반복되면 남북 군사관계는 9.19 이전으로 회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북이 해묵은 논쟁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정부가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측이 사과 직후 우리 수색활동에 대해 ‘영해 침범’이라고 규정한 것은 이번 사태로 북한의 ‘경비계선’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면서 “우리 정부가 최초에 북측에 ‘공동 수색’이나 ‘수색 협조’ 등을 먼저 제안했다면 북측이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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