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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최기자의 동행]섬 주민 111명인데 고양이가 130마리?…모도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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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맘 포획하고 수의사 중성화로 개체수 조절

[편집자주]반려동물 양육인구 1000만명 시대. 전국 각지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반려동물 관련 행사가 열립니다. 봉사활동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인해 꼭 가보고 싶은 행사인데 취소되거나 가기 힘든 상황이 돼서 놓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행사들을 '최기자'가 대신 가서 생생하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동물 구조 현장이나 야생동물 등 '생명'과 관련된 현장은 어디라도 달려가겠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동물이 동행하는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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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현 인천시수의사회 수의료봉사단장이 27일 인천 모도 배미꾸미조각공원 인근에서 길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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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뉴스1) 최서윤 기자 = "고양이들이 섬 주민들보다 더 많아요. 몇 년 전만 해도 한 마리도 없었는데……."

지난 27일 만난 배미꾸미조각공원 관계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동물을 좋아하지만 털 알레르기가 있다고 했다. 수의사들이 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하는 동안 눈물, 콧물을 쏟으며 "천식까지 왔다"고 고백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배미꾸미조각공원은 인천 모도에 자리 잡고 있다. 모도는 인천 옹진군 북도면에 속한 작은 섬이다. 영종도 삼목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간 뒤 신도, 시도와 함께 둘러볼 수 있어 3형제 섬으로 불린다. 인구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67가구 111명뿐이다.

그런데 이 공원 근처에 사는 고양이들만 어림잡아 130마리가 넘는다. 정확한 숫자가 아니라 더 될 수도 있다고. 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배미꾸미조각공원, 늘어난 고양이로 속앓이

배미꾸미조각공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은 지난 2003년 이일호 조각가가 해변에 작업실을 짓고 본인의 작품을 하나씩 갖다놓으면서 입소문을 탔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작업실은 카페와 펜션으로 리모델링했다. 2005년에는 김기덕 감독이 배미꾸미 해변을 배경으로 영화 '시간'을 촬영하면서 해외에도 알려져 외국 관광객들도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2006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도 없었다. 방문객이 버리고 간 몰티즈, 슈나우저, 시추 등 강아지 세 마리만이 공원을 지키고 있었다. 한없이 평화로워보이는 공원이지만 쥐들이 골칫거리였다. 강아지들은 소형견이고 파양당한 상처가 있는 순둥이들이라 쥐를 잡지 못했다. 고민 끝에 공원에서는 고양이를 한 마리 데리고 왔다.

이후 마을의 또 다른 고양이 두 마리가 공원에 들어오면서 새끼를 낳았다. 그러면서 개체수는 걷잡을 수없이 늘어나 70~80마리에 달하게 됐다. 이 와중에 2015년 누군가가 또 막무가내로 카페에 두고 간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교배를 하는 바람에 130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됐다.

배미꾸미조각공원은 겉으로 보기엔 성(性)을 주제로 한 작품과 반짝이는 해변이 잘 어울리는 명소다. 하지만 늘어난 고양이들로 인해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카페와 펜션 수입은 전기요금 내기도 버거웠다. 2000원밖에 되지 않는 입장료가 수입의 전부지만 이마저도 사료비로 나갔다.

공원 관계자의 속 타는 마음을 알 리 없는 고양이들은 몇 마리씩 모여 무리를 형성하고 영역 다툼을 했다. 애묘인들은 이런 모습이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방문객들은 놀라거나 울음소리에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털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관광객도 있었다.

결국 공원 관계자들은 궁여지책으로 고양이 분양을 시작했다. 카페 안에 자리 잡은 고양이의 새끼들 중 일부는 관심을 보이는 방문객들과 떠났다. 고양이를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서울 용산, 경기 파주, 광주광역시까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직접 찾아가 고양이들을 안겨줬다.

분양을 해도 워낙 개체수가 많고 계속 새끼가 태어나다 보니 고양이 숫자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지난 여름에는 태풍과 집중호우로 인해 새끼 고양이 수십 마리가 죽고 여기저기 사체가 흩어졌다. 공원 관계자들은 죄책감에 빠졌다. 펜션과 카페 관리에만 신경을 써도 모자랄 판에 고양이까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들은 지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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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옹진군 모도 배미꾸미조각공원 전경 © 뉴스1 최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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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의사-캣맘, 공조해 길고양이 개체수 조절

그러던 중 우연히 공원을 찾았던 한 캣맘(고양이 밥 주는 사람)이 중성화 수술을 추천했다. 중성화는 개체수 조절도 하지만 고양이들의 발정기 울음소리를 줄여준다. 암컷의 경우 자궁축농증 등도 예방해 준다. 문제는 비용. 모도는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중성화 수술 지역도 아니고 인근에 동물병원도 없다. 가뜩이나 수입도 많지 않은데 중성화 수술 비용까지 낼 여력이 없었다.

공원 관계자는 인천시수의사회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때마침 수의료봉사단 '야냐'를 꾸릴 계획을 세운 박정현 회장은 모도에서 발대식을 갖기로 했다. 박 회장은 "인천의 대표 관광지가 고양이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안타까웠다"며 "야나는 'you are not alone'의 약자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함께 돕겠다는 의미가 담긴 만큼 모도의 사연을 듣고 이곳에 모이게 됐다"고 밝혔다.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기 하루 전날 서울지역 캣맘들이 공원을 방문해 고양이 35마리를 포획했다. 김헌일 옹진군청 팀장은 동물보호 예산으로 포획틀을 지원했다. 캣맘들은 포획틀에 고양이들을 넣고 불안해하지 않도록 천으로 틀을 덮어 시야를 가렸다.

27일 오전 일찍 인천시수의사회를 비롯해 경기도수의사회, 서울시수의사회 소속 수의사들이 모여 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시작했다. 강원대 수의대 동아리 와락 학생들은 수의사들을 보조했다.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소독을 철저히 하면서 진행했다. 대한수의사회에서도 일정 비용을 지원했다. 한 수의사는 "고양이 중성화는 사명감이기도 하다. 개체수가 너무 많아져서 유해동물로 취급받으면 안 되니까"라고 말했다.

사실 수의료봉사가 쉬운 결정은 아니다. 24시 동물병원을 제외하고는 보통 병원은 주 6일을 근무한다. 일요일 하루를 쉬는데 이날 봉사를 간다. 또 몸만 와서 봉사하는 것도 아니다. 수술 도구와 약품들도 챙겨야해서 사비가 나가기도 한다. 일을 해서 돈을 벌거나 쉬면서 충전해야 할 시간에 자신의 돈까지 쓰고 있는 셈이다.

동물단체나 활동가들은 동물을 구조하고 후원을 받기도 하지만 수의사나 기업이 하는 봉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서 불편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날 공원 측은 수의사들에게 고마움을 잊지 않아 훈훈한 풍경이 연출됐다. 공원에서는 중성화 수술이 끝나고 수의사들에게 해초비빔밥과 다과를 정성껏 대접했다. 수의사들도 힘든 내색보다 "덕분에 멋진 바다와 좋은 작품을 봤다"고 화답했다.

오보현 인천시수의사회 수의료봉사단장은 "야나의 발대식을 이런 뜻 깊은 곳에서 하게 돼 기쁘다"며 "고양이들은 암수 구별이 쉽지 않고 번식력이 굉장히 강해서 개체수가 늘어나는 것이 한순간이다. 아직 이런 것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교육과 수의료 지원 등 수의사들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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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수의사회, 경기도수의사회 등은 27일 인천 모도 배미꾸미조각공원 인근에서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지원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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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수의사회는 27일 경기도수의사회에 외부구충제를 기증했다. 앞줄 오른쪽 첫번째부터 박정현 인천시수의사회장, 한병진 경기도수의사회 동물사랑봉사단장, 오보현 인천시수의사회 수의료봉사단장 © 뉴스1 최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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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수의사회는 27일 인천 모도 배미꾸미조각공원에서 수의료봉사단 발족식을 가졌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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