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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조국 보도’ 명예훼손은 유죄, ‘김기춘 보도’는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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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기춘 전 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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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과거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가 쓴 기사에 대해 ‘가짜뉴스’라며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지만, 검찰이 불기소처분했던 것으로 28일 뒤늦게 확인됐다. 법조계에서는 “정권에 따라 검찰이 법리적 판단을 달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기춘 ‘최순실 빌딩’ 머물렀다" 보도, 檢 “추측 가미한 기사” 판단

서울서부지검이 2017년 11월 작성한 ‘불기소결정서’에 따르면, 이 기자는 2016년 10월19일 인터넷 매체 고발뉴스에서 ‘최순실일가 수천억 재산추적…김기춘은 거기서 뭐했나?’ 등 기사를 보도했다. ‘김 전 실장이 2013년 1월부터 2013년 8월까지 비서실상에 임명될 때까지 이곳(최씨가 보유했던 신사동 미승빌딩)에 머물렀다’ ‘(미승빌딩은) 지하주차장에서 6층 직행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 때문에 보안상 유리하다는 이유’ ‘김 전 실장은 최순실씨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국정 초반 청사진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등의 내용이다.

김 전 실장 측은 이 기자가 사실 확인 없이 세간에 떠도는 소문으로만 기사를 작성했다며 그를 고소했다. 실제 최씨는 2016년 12월 변호인을 통해 김 전 실장을 모른다고 밝혔다. 정호성 전 대통령비서실 비서관도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김 전 비서실장은 최씨를 모른다고 증언했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도 최순실씨 빌딩에 김 전 실장이 출입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사건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수사팀까지 이 기자의 기사가 사실이 아님을 입증한 셈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 기자는 과거 이회창·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일했던 윤모씨를 취재해 기사를 작성했다. 그런데 윤씨는 검찰 조사에서 “'김기춘이 거기(미승빌딩)에 살면서 판을 짜는구나'라는 취지로만 말했다. 엘리베이터를 타 보안이 유리하다거나 김 전 실장이 머무른 시기를 이 기자에게 특정해 말한 바 없다”고 진술했다.

이 기자 측은 검찰 조사에서 “윤씨와 미승빌딩 임차인인 조모씨를 취재하는 등 확인 절차를 거쳤다”며 “당시 김 전 실장이 퇴직한 상태여서 연락처 등을 알 수가 없어 연락할 수 없었다”고 했다. 김 전 실장이 엘리베이터를 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보안상 이용한 것으로 추정했다”고, 김 전 실장이 미승빌딩에 머문 시기에 관해서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가기 전까지 머물렀다고 판단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 기자가 취재원이라고 밝힌 조씨 역시 결정적 증언을 내놓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이 제출받은 이 기자의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조씨는 이 기자에게 “자세히는 모르고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으나 발레파킹하는 직원들이 김기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검찰은 이 기자의 기사에 대해 “이 기자는 취재원으로부터 확인한 사실을 종합하고 자신의 추측을 가미해 기사를 작성했다”며 ‘추측성 기사’라고 적시했다.

◇'조국 보도'는 유죄, ‘김기춘 보도’는 무죄?

하지만 검찰은 결국 이 기자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이 기자가 각 기사 내용이 허위임을 명백히 인식하고 기사를 게시한 것이라고 인정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게시한 것”이라는 이유를 밝혔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최근 검찰이 기자들에게 내리는 잣대와 판단 기준이 너무 다르다”는 얘기가 나온다.

유튜브 채널 ‘거짓과 진실’을 운영하는 우종창씨는 지난 2018년 1월쯤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당시 국정농단 재판장이었던 김세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와 청와대 인근 한식당에서 부적절한 식사를 했다는 취재원의 제보를 보도했다가 조 전 장관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우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 7월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마성영)는 우씨에 대해 징역 8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 사건 재판에서 조 전 장관과 김 부장판사는 1심 당시 증인으로 출석해 서로 만난 사실 자체가 없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우씨는 청와대 인근 한식집을 방문해 현장확인을 하고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에게 질문지를 보내는 등 추가 확인절차도 거쳤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을 위한 과정조차 거치지 않고 방송을 통해 허위사실을 강요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한 지검장 출신 변호사는 “두 기자 모두 전언(傳言)으로 기사를 작성해 보도했다. 당사자의 확인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과 당사자들이 이후 부인했다는 점 등 본질이 같은 사건”이라며 “검찰은 오히려 이 기자가 자신의 추측을 기사에 가미했다는 결론까지 내려놓고 ‘조국 보도’ 기자는 기소하면서 ‘김기춘 보도’ 기자는 불기소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표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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