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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보름달 같은 달항아리…시름마저 넉넉히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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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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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패다.'

3년전 달항아리 좌우 대칭이 너무 완벽해지면서 도예가 강민수(49)의 고민이 깊어졌다.

20년간 달항아리만 빚다보니까 실력이 일취월장해 너무 반듯한 작품이 나왔다. 그러나 달항아리의 매력은 '이지러짐'이다. 항아리 몸통 위와 아래를 따로 만들어 붙여 장작 가마에 넣으면 열전도율이 다른 탓에 완벽한 동그라미가 잘 나오지 않는다. 한쪽이 살짝 쳐져서 동서남북으로 달라보이는 달항아리의 미학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숱한 번민 끝에 초심으로 돌아가 머리를 비우고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빚자 멋스럽게 이지러진 달항아리가 나왔다.

서울 인사동 노화랑 개인전에서 만난 그는 "물레 위에서 달항아리가 움직이면 나도 덩달아 춤을 춰야 진정한 작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욕심을 비우고 정직하게 빚어낸 달항아리 30여점이 보름달처럼 두둥실 전시장을 밝히고 있었다. 코로나 시대 우울과 세상 온갖 시름을 넉넉히 품어줄 것 같다. 그 풍요로운 자태는 작가의 고된 노동의 결실이다. 경기도 광주시 쌍령동 가파른 산비탈에서 혼자 껍질을 벗겨낸 강원도 소나무 2t을 24시간 동안 가마에 던져 1300도 불을 피워 구워냈다.

"달항아리 8점이 들어가는 장작 가마인데 실패율이 높아요. 달항아리 한쪽이 너무 쳐지거나 금이 가거나 재가 많이 붙으면 깨서 버려야 합니다. 달항아리는 예측할 수 없는 '불의 예술'이어서 한달 2~3점 성공하죠."

열이 골고루 전달되는 가스 가마 대신 장작 가마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불을 다루는 긴장감이 있어야 달항아리가 멋있기 때문이다. 옛 달항아리 높이는 45~48㎝인데 그는 65㎝까지 도전하기에 성공 확률이 낮아진다.

그는 "크게 만들면 이지러질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더 멋진 작품 이 나온다"며 "열과 성을 다해 제작하지만 뜻대로 안되는 게 우리 인생과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2005년 강원도 양구에서 구해와 창고에 보관중인 백토를 정성껏 보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햇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관리하는게 관건이다. "흙이 토라지면 가마에서 깨지기에 잘 달래줘야 해요. 15년 전 따뜻한 느낌이 나는 양구 백토 2000t을 사왔는데 절반 정도 남아 있어요. 다 쓰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깨끗한 백토를 찾아야 합니다."

'달항아리를 들여놓으면 복이 굴러와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한달에 2~3점 만드는 작가의 달항아리 가격은 600만~700만원이어서 큰 부(富)를 이룬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달항아리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만들 때마다 다른 형태가 나와 싫증이 안 난다. 힘들지만 결과물을 보면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시절 은사로부터 "너는 달항아리만 빚어라"는 조언을 듣고 한우물을 파고 있다. 깔끔하고 도량이 큰 그에게 잘 어울려서다. 당시만 해도 달항아리가 팔리지 않던 시절이라서 먹고 살 걱정이 앞섰지만 지금은 외국에서도 알아준다. 지난해 뉴욕 티나킴 갤러리에 전시한 작품 13점이 거의 다 팔렸다.

"달항아리 자료가 거의 없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공부했어요. 제가 청각장애인이라서 입장료가 무료거든요. 자꾸 보니까 달항아리 위아래가 붙는 흔적이 있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만드는게 백의 민족의 특징이죠"

유년시절 열병으로 청각이 불완전한 그와 대화를 하려면 마스크를 벗어야 한다. 상대의 입모양을 보면서 의사 소통을 한다. 그렇게 세상의 잡음으로부터 단절된 채 순수한 달항아리만 빚고 산다. 전시는 10월 17일까지.

[전지현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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