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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서로의 거절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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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ㅣ문미정의 ‘10대를 위한 자기방어수업’

싫다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무언가에 걸려 밖으로 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너무 강하고 지나치게 센 말로 느껴질 때가 있다. 거절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 상대방의 마음만을 헤아리며 거절하지 못한다. 강력한 저항이나 단호한 경고가 아니라 거절하는 것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거절’과 ‘너의 거절’ 사이에서 대화하고 더욱 믿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간다. 나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인간관계. 가족관계에서부터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에까지, 가깝고 오래된 관계에서부터 단 한 번뿐인 관계에까지 두루 적용된다.

거절하지 못한다면 판매자가 권하는 모든 물건을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도, 감당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고, 무엇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를 밝히는 것이 거절이다.

한겨레

우리는 ‘나의 거절’과 ‘너의 거절’ 사이에서 대화하고 더욱 믿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간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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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영역에 대해 생각해보자. 온전히 나의 권리이자 권한인 ‘나의 영역’, 서로의 바람이 충돌하거나 함께 대화하고 협상해볼 수 있는 ‘우리의 영역’. 두 영역 중에서 ‘나의 영역’에 관한 것은 명확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영역에 속한 문제는 함께 대화해보아야 할 주제이다.

‘어깨를 툭툭 치는 것은 불쾌하게 여기는구나’ ‘재미있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함께 큰 소리로 웃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팔짱은 싫어하고 손잡는 걸 좋아하는구나’ 하는 식으로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신뢰가 깊은 관계를 만드는 데에 거절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판매자가 권하는 모든 물건을 살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라도 거절이 필요하다. 내가 바라는 것과 바라지 않는 것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자주 생각해본다면 거절은 더 편안하고 쉬워진다.

친구가 힘들어하고 있을 때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그가 바라는 모든 순간에 그가 바라는 방식으로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얼마나 시간을 낼 수 있고 어떤 방식으로 힘이 되어주고 싶은 것일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기꺼이 함께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거절이 필요한 순간이 올 수 있다.

옆에 서고 싶은 마음과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밝히는 것이 진심일 것이다. 한 걸음 더 깊어지는 관계는 거절 이후에 시작된다. 거절 이후에 펼쳐지는 이야기가 진짜 관계를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의 영역’을 침범하는 문제가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색깔’을 말할 때처럼 편안하게 말해보자. 나의 영역을 알려주기, 내가 바라는 것을 말해보기,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분명히 밝히기. 나는 이게 좋아, 그건 싫어, 이래서 싫어, 그래도 싫어요. 각자의 진솔한 거절을 두고 펼쳐질 감정, 대화, 받아들이고, 바꾸기. 그 과정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이 소중한 ‘우리 사이’이다.

한겨레

문미정 ㅣ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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