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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충재 칼럼] 김정은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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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하고 거칠지만, 자기과시형에 계산적
민간인 사살후 사과, 이중적 성향의 표출
문 대통령, 김정은 상대하려면 냉철해져야


한국일보

북한 노동신문이 지난 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수해현장을 찾아 복구 상황을 현지지도 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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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에 실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에는 그의 성격과 성향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담겨 있다. 김정은은 친서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극존칭인 ‘각하’라고 칭하며 둘의 만남을 ‘판타지 영화’ ‘마법의 힘’ 등으로 과장해 표현했다. 자신도 내키진 않았겠지만 트럼프에게서 양보를 얻어내려는 치밀한 생존 전략일 것이다.

한편으로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뒤 머리를 전시했다고 트럼프에게 말했다는 대목에선 잔인하면서도 자기 과시적 성향이 드러난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김정은의) 성격이 대단히 급하고 즉흥적이며 거칠지만, 두뇌와 논리가 있는 편”이라는 분석은 설득력 있다. 과격한 행동을 하면서도 전략적 판단에 능한 이중적 성향의 소유자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이 우리 민간인 사살 사건에 대해 이례적으로 직접 사과한 것도 그의 두 얼굴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군의 잔혹한 만행은 김정은의 강력한 포고에 따른 이행일 텐데 이를 부하들의 우발적 잘못으로 치부하려는 행태는 이중적이다. 남한 국민의 분노가 치솟고,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이 높아진 데 따른 고육지책인 셈이다. 남북 관계를 완전히 외면할 상황이 아니라면 남측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판문점 도보다리와 백두산 정상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치켜세우다가 1년 만에 동생 김여정을 시켜 온갖 저주와 악담을 퍼붓게 한 게 김정은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요구하다 느닷없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켜 전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김정은의 이중성에 북한의 습성인 벼랑 끝 전술이 더해져 상상을 초월하는 해괴한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인도적 구호 활동을 위해 여러 번 방북한 정병호 한양대 교수는 “북한과 협상 때마다 반복되는 패턴이 있는데 악수-웃음-대화-갈등-폭언-결렬-비난의 사이클”이라고 말했다. (‘고난과 웃음의 나라’) 언제든지 판을 엎어 버릴 수 있다는 생각, 자존심과 결사항전의 의지가 그런 기이한 행태가 되풀이되는 배경이라는 것이다.

김정은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문을 닫아걸고 재난이 잇따르는데도 남한의 끈질긴 지원 제의를 거부하는 바탕에는 이런 심리가 깔려 있다. 대북 제재를 풀기 위해 초강대국 미국과 두 차례나 정상회담을 했던 김정은으로서는 푼돈에 불과한 남한의 물물교환 정도는 안중에도 없다. "한국군은 북한 상대가 안 된다"는 김정은의 언급도 그런 시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미국만 쳐다보는 북한으로서는 미 대선이 끝나기까지는 협상장에 나올 생각이 없다. 트럼프가 됐든, 바이든이 됐든 차기 대통령이 결정되면 다시 한 번 통 큰 베팅을 하겠다는 심산이다. 그때가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남한에도 유화적 제스처를 보낼 것이다. 김정은은 민족이라는 감상적 접근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논리와 전략에 따라 움직인다.

노회한 김정은에 비해 문 대통령은 일점 돌파식이다. 남북관계 개선과 경제협력, 한반도 평화는 양보할 수 없는 목표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북한의 깊은 속내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번번이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에서 문 대통령이 늑장 대응으로 비판받는 이유도 냉혹한 현실보다 이상을 앞세운 탓이다.

문 대통령이 유엔에서의 종전 연설을 취소하지 않은 것도, 국가안정보장회의(NSC) 주재를 꺼린 것도, 사고 발생 발표를 서두르지 않은 것도, 북한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려는 의지가 지나치게 강한 데서 비롯됐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을 상대하려면 보다 냉철한 현실 감각이 필요하다.

이충재 주필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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